이웃들의 이야기

미치도록 좋아

종이인형 꿈틀이 2001. 7. 9. 19:38

* 이 글은 '양지건'이라는 동생의 글입니다.
가끔 이의 글을 시골집의 밥상에 차리렵니다.
괜찮은 별미라고 여겨주세요.
-종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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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다 슬펐다. 외국어 조기 교육 열풍을 다룬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빨이 군데군데 빠진 개구쟁이 아이가 한 말을 들으며 나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 녀석은 코나 줄줄 흘리며 하루 종일 뛰어 다녀야 어울릴법한 장난꾸러기 얼굴을 하고,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심각한 말을 했다. "나는요 너무 너무 미국 사람이 되고 싶어요" "왜?" "영어를 미국 사람처럼 잘하고 싶거든요" 엇비슷한 나이의 한 여자 아이는 한글은 헷갈려서 싫고 영어가 편하단다. 이 아이들은 많아야 여섯 살 남짓해 보이는 녀석들인데, 하루에 여섯 시간이 넘는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고 있었다. 선생님은 전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이었고, 학원 안에서는 오로지 영어만 쓸 수 있었으며, 아이들 중에는 우리말도 잘 못하는 꼬마도 끼어 있었다. 영어뿐만이 아니다. 겉 늙어버린 5학년 여자 아이는 일본어를 배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초췌해 보였다. 왜 벌써 일본어를 배우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아이는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배운다고 확신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마찬가지로 일본어를 배우며 일본어 능력 측정 국가 고시를 준비한다는 6학년 여자 아이는, 높은 급수를 따면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에 하루에 3시간씩 일어를 공부한단다. 강남에 사는 좋은 부모님을 만난 덕에 이 아이들의 유년은 이렇게 책 속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대학을 선택할 때에는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영문과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는 영어에 상당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영어라고 말하기보다는 외국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한 말일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전공은 고등 학교에서 생각하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다른 과 아이들이 나보다 더 열심히 영어를 공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군대를 다녀 온 이후이다. 도서관에서 철학 책이나 부전공인 종교학 책을 꺼낸다는 것이 꽤나 희귀한 일에 속한다는 것도 그 때 알게 되었다. 모두들 영어 공부를 하느라 난리였다. 과에 관계없이 한 번쯤은 연수를 다녀오는 것이 취직에 유리하고, 하다 못해 카투사를 나온 사람이 취직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수능 점수로 날 평가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토익 점수를 보겠단다. 복거일이라는 좀 모자란 자유주의자는 영어 공용화를 하자고 어설픈 논리를 주장하고, 이러한 주장은 자식에게는 영어의 멍에를 주기 싫은 한 맺힌 사람이 한국에 많아서 그런지, 예상외로 높은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영어에 대한 열풍은 미국에 대한 짝사랑에 기인한다. 이 짝사랑은 좀 중증이라서 상대의 반응에는 개의치 않고 적극적인 구애를 멈추지 않는다. 거의 스토커 수준이다. 일본에서는 국가와 시민이 하나가 되어 미군에게 압력을 가해 성폭행 혐의의 중사를 기소 전 신병 인도하는데, 우리 나라의 정부는 미군 부대와 대사관을 지키기에 바쁘다. 미군에게 천국이라고 알려진 기지촌의 여성들을 위해서는 친절하게도 정기적인 성병 검진을 통해 미군과 자국민을 성병으로부터 보호한다. 미국에 대한 일방적이고 적극적인 구애는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교회에서 유행하는 것이라면 언제나 발빠르게 도입하는 것이 먹물 먹은 자의 소명이다. 이 나라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신앙인의 삶은 모를지라도 요즘 잘 나간다는 서양 신학자의 책은 좀 읽어 봐야지 그래도 대화에 낀다. MD나 교토 의정서는 잘 몰라도 메이 플라워를 타고 왔다는 까마득한 미국인들의 할아버지의 믿음에 대해서는 잘 안다. 아메리카의 엄연한 주인인 인디안을 동물원 같은 보호 구역으로 몰아 넣은 미국인은 몰라도, 하나님 축복으로 세계에서 가장 잘 살게 된 미국인은 안다. 예배 때는 최신 유행 찬양을 얼른 번역해 부르는 것이 좋으며, 말씀 때에도 영어 한 마디 정도는 섞는 것이 왠지 대학생의 지적 수준을 채워 주는 것 같다.

배우는 것은 좋다. 영어를 통해 자신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언어는 문화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수이며, 언어를 배우는 사람이 그 문화에 대해 객관성을 유지하기는 힘든 일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용옥이 교회를 비판하며 거대한 세력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적에게 투자한다고 한 것은 곱씹을 가치가 있는 말이다. 미국은 영어를 통해, 혹은 미국에서 공부한 수 많은 지식인을 통해 자신의 힘을 계속해서 재생산한다는 것이 김용옥의 주장이다. 고로 유학을 가는 자, 영어를 배우는 자 미국에 대한 객관성을 잃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배움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늘 돌아봐야 한다.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어쩌면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 일본어를 배운다는 아이의 고백이 솔직한 우리의 고백이 아닐까?

고단한 우리 역사를 돌아본다. 중국에 씹히고 일본에 당하다가 우리는 이제 미국이라는 형에게 얻어맞고 있다. 아픈지도 모르고 맞고 있으니 이것이 불행인지 행인지 모르겠다. 목마르다. 콜라나 마셔야겠다.

-양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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