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뫼지기(큰형)

꽃들의 시련

종이인형 꿈틀이 2004. 4. 2. 19:17


시골에 살면서 해마다 새봄이 오는 소식을 가장 실감 있게 느끼며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알뿌리를 가지고 있는 여러해살이 꽃들이다.
수선화와 상사화 그리고 히야시스는 정월 보름만 지나면 땅위에 하얀 눈이 있어도 뾰족한 초록색의 잎을 땅위로 얼굴을 내밀듯 솟아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늘 보이는 나무들과 달리 이 꽃들은 겨울에는 전혀 볼 수 없는 흙속에 꼭꼭 숨어 있다가 봄이 온다 싶으면 제일 먼저 기지개를 켜듯 솟아나는 생명의 신비와 환희를 맛보게 한다. 어쩌다 잊어버리고 화단에서 삽을 가지고 땅을 파다 깊이 잠든 알뿌리를 발견하고 황급히 놀래어 도로 묻어주는 일도 있었다.
땅위의 바람은 아직도 차갑지만 따뜻한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에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다 추워지면 그대로 성장이 멈추며 따뜻한 날씨가 오기를 기다리곤 한다.

봄의 날씨는 따뜻하다가도 갑자기 추워지는 기상의 변덕스런 과정이 여러번 지속된다. 이때 가장 시련을 겪는 식물은 봄인줄 알고 땅위로 올라왔던 꽃들이다. 특히 수선화는 다른 꽃보다 앞서 자라기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지난 폭설로 고속도로가 마비되는 그때 이곳에도 적잖은 눈이 내렸었다.
며칠만 있으면 꽃을 피우려고 꽃봉오리까지 달린 수선화가 벌거벗은 몸으로 혹독한 추위와 싸우고 줄기를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는 더 추워지자 꽃봉오리를 가진 줄기는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듯이 쭉 쳐진채 땅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비록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가엾은 마음 금할 수 없었다. 따뜻한 봄인 줄 알고 부지런히 태양을 향해 올라왔건만 변덕스런 날씨가 다시 겨울로 가는 듯한 추위가 다가오자 그저 참고 기다릴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사람들은 이 추위를 꽃샘추위라고 부른다. 남이 잘되고 행복을 누리고자하면 시기하는 인간의 죄성을 자연의 현상으로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한번 더 깊이 생각하면 이 시련은 꼭 필요한 자연의 질서이다.
병아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듯이 새로운 세계로의 변화는 반드시 고통의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도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해산의 고통으로 천하보다 귀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는 것이다.

봄을 알리는 이 꽃들이 일단 땅위에 모습을 드러내면 아무리 추워도 다시 포근한 흙속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추우면 그저 성장을 멈추고 기다릴 뿐이다. 그러면 반드시 봄은 오고야 말고 마침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야 만다. 지금은 수선화가 마치 나팔이 큰 금관악기 마냥 동쪽을 향해 활짝 피어 있고 히야시스도 위를 향하며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모진 꽃샘추위를 견디고 마침내 꽃을 핀 식물들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의 한 면을 보는 것 같다. 특히 요즘처럼 파혼(破婚)의 가정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인내하지 못하고 성급한 판단으로 여러 사람이 고통을 겪는 결과를 보면서 봄에 피어나는 꽃들을 통해 주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결혼이 갈수록 화려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혼인식이지만 상대적으로 늘어만가는 이혼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결혼은 분명 축복이요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책임과 의무와 고난이 반드시 따라온다. 꽃샘추위와 같은 시련이 오더라도 참고 견디며 살아가면 활짝핀 꽃처럼 행복과 열매가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지금의 노인들은 이보다 더 엄청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약속대로 가정을 지키며 살아왔다. 비록 본인들은 험난한 세상을 살았어도 그 자녀들을 통해 위로와 보람을 받게 되는 것을 우리의 이웃들을 통해 늘 확인한다.
비단 결혼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행복 뒤에는 희생과 고난의 과정을 지나서 얻을수 있는 것이다.  
꽃샘추위는 간간이 오다 지나가지만 반드시 봄은 돌아온다.

해마다 봄이 되면 나 역시도 한차레 몸살감기를 홍역처럼 치른다.
이때는 밥맛도 없고 삶의 의욕도 떨어진다. 이때는 그저 조용히 쉬면서 한방차를 마시면 이삼일 지나서 몸이 회복된다. 올해는 독감과 함께 오는 바람에 며칠 더 앓아 누웠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며 이전보다 더 몸이 개운하고 밥맛도 좋아진다. 나에게 이러한 과정은 건강을 유지하는 아주 자연스런 일로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고 있다. 자연을 좋아하기에 자연을 닮아 가는 체질인가 보다.

-활뫼지기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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