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뫼지기(큰형)

타는 재미

종이인형 꿈틀이 2004. 3. 10. 13:01

 

학교에서 돌아온 서진이는 아직 형과 누나만큼은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그렇지만 인라인스케이트는 제법 능숙하게 타고 다니며 동네 골목을 휘젓고 다닌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줄에 매어있는 달마시안(개)을 끌고서 도로에 나온다.

집에서 점점 멀어지면 달마시안은 억지로 끌려가는 듯한 모습으로 마지못해 서진이를 따라간다. 어느 정도 집에서 떨어진 후에 서진이가 방향을 바꿔 집으로 돌아갈 기미를 보이면 달마시안은 집에 있는 강아지를 그
리워서 그런지 맹렬한 기세로 달려온다. 이때 서진이가 잡고 있는 개줄이 당겨지고 자연스레 서진이의 인라인은 개가 달리는 대로 굴러간다. 이것이 그리 신나는지 서진이는 탄성을 지르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자기는 가만 있어도 움직여지는 그 느낌에 스릴을 만끽하는 것이다.


가만있어도 저절로 굴러가는 모든 것이 좋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시절 추운 줄도 모르고 하루종일 썰매를 타며 깔깔대던 그 시절이 그립다.
학교 오는 길에 어쩌다 동네 아저씨의 달구지를 만나면 그 날은 행운의 날이다.
사람걸음이나 소의 걸음은 비슷하지만, 시오리 되는 시골길을 흔들흔들 앉아서 가는 그 맛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어쩌다 동네에 트럭이라고 오는 날이며 아이들은 만사 제쳐놓고 트럭 주위로 몰려든다. 위험하다고 가까이 오지 말라는 운전사의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차를 타고자 하는 맘으로 차가 출발하기가 무섭게 각자가 잽싸게 올라탄다.
차가 어디로 가는지, 언제 멈추는지 상관없이 그저 차 타는 재미로 무조건 올라타면 그 시간만큼은 영웅(?)이 된다.
운전기사가 차를 멈추고 아이들을 잡으려 하면 재빨리 도망가다가 다시 출발하면 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 이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야 트럭은 동네를 겨우 벗어난다.

언젠가 그 날도 트럭이 동네에 들어섰다.
나와 친구들은 트럭 뒤의 문에다 손을 잡고 몸은 힘껏 뒤로 제치고 트럭에 메달렀다. 그래야만 앞의 운전기사가 눈치 못채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뿔싸! 트럭 뒤에 아이들이 매달린 줄 모르고 차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이다. 나와 친구는 결단을 해야 했다.
'이대로 타고 갈것인가? 아니면 바닥에 뛰어 내릴 것인가'.
밑을 보니 누런 땅이 획획 지나가는 모습이 아닌가?
낌새를 보니 차는 점 점 속도를 내는 것이다.
옆에같이 매달린 친구는 이미 차에서 손을 떼고 내가 어떻게 하나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 혼자라는 것과 빨라지는 차의 속도와 점점 힘이 빠지는 손목을 보자 더럭 겁이 났다. 순간적으로 손을 놓아야만 될 것 같아 눈 딱 감고 손을 놓았다.
그러자 내 몸은 빙그르 한바퀴 돌고서 땅에 떨어졌다.
얼마나 놀랬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 것이다.

지금은 탈 것도 많고 생활의 필수품인 자동차를 직접 몰고 있지만 그 때의 흥분과 은근한 맛은 못 느낀다.

활뫼지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