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물(둘째형)

500원짜리 장발장을 만들렵니까?

종이인형 꿈틀이 2001. 4. 23. 10:09
동생인 종이인형이 공무원 연수중입니다.
그래서 제가 칼럼을 자주 올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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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빚어낸 구조적 비극들이 많지요.
한 사람의 행위를 살펴볼 때 아주 사소한 일이 그 사람 일생을 망치는 경우들이 어디 한 두건이겠습니까?

우리 어울지기 채광수목사님의 요즘 일과는 재판정을 찾는 것과 감호소를 들락거리는 것이 가장 큰 일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가뭄에 콩나듯이 보이던 한 녀석이 사고를 쳐서 구속이 된 것이죠.
석(가명)이라는 아이인데 덜컥 겁이 나니 여동생을 통해 아빠보다 목사님을 찾더랍니다.
내용인즉 공고 1학년에 다니는 녀석이 용돈이 궁했는지 길가는 애를 폭행하고(팔꿈치가 살짝 긁혔대나 어쨌대나)기껏 뺏은 돈은 500원이었습니다.
그 애의 행위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어쨌거나 잘못 된 행위이니까요.
그런데 피해자학생의 아버지가 기자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합의도 안해주고 무조건 소년원에 집어 넣으라고 하여 처음 결과는 1년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저는 그런 학부모의 행위에 가타부타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행히 채목사님이 구명도 하고 여러가지 정상을 참작하여 지금은 감호소에 들어가 있지만 부모가(현재 이혼 후라서 편부는 막노동판을 다니고 있고 할머니가 석이와 여동생을 키워왔다 합니다)면회를 안 오고 보증을 안 하면 고아원으로 보낸다 하더군요.

그 애가 목사님과 편부에게 보낸 편지를 원문 그대로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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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광수목사님
저. 석이예요.목사님.
저 재판 잡혔어요.
4월26일 오후2시 재판 이에요.
근데 저 고아원 갈 꺼 같아요.
부모님이 면회 잘 안어면 고아원 갈수도 있데요.
목사님 저 고아원 가기 싫어요.
저 여기서 진짜. 반성 많이 했어요.
근데. 아빠가. 면회도 안오니깐 밥맛도 없구 용기도 잘나지 않아요.
아빠 한번 보고 싶어요.
지금 그게 소원이에요.
맨날 밤에 아빠 면회 오라고 기도 하고 있는데. 면회오질 않아요.
저 진짜. 고아원 가기 싫은데 .
맨날 걱정되고.울고 싶고 그래요.
목사님 저희 아빠랑 면회 좀 하게 해주세요.
여기서 반성하고 아빠한테도 죄송해하고 있어요.
진찌에요.믿어주세요.
그리고 사회에 나가면 말썽피지 않는 석이가 될꺼예요.
목사님께 맹세할께요.
제발 아빠좀 만나게 해주세요.
꼭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저 진짜.반성하구 있어요. 죄송합니다.
재판날짜. 집에 통보 편지로 갔어요)-석이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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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 석이
미안해. 이런데 들어와서. 미안하고 부끄러워 죽겠네.
그리구. 집이 나 나오고 아빠 속만 썩히고 미안해.
어린나이에 이런데나. 오고.아빠 그리구. 나 선고때.
왜 울었어. 나 그럼 여기서 편히 못 있써.
이런꼴 아빠한테 보이고 싶진 않았는데...
선고때 아빠가. 올줄 꿈에도 생각 못했어.
근데 버스에서 내리니깐 아빠가. 있더라구.
속으로는 기뻣지만. 내색을 안했지.
그리구. 걱정마. 여기서. 한달만 있다가.
재판(가정법원) 받을때 1.3호 받고 나갈꺼야.
나가서. 이제 이런 짓 안할꺼야.
한번실수하지. 두번 실수 하진 않어.
나가서. 착하게 이쓸가야.
그리구 할매랑. 현주한테 안부전해주고.
그리고 연숙이한테. 나 나갈때까지 잘 있타고 하고 바람피지 말라고 전해줘.
그리구 여기서 아무 불편함 없이 잘있으니깐. 걱정하지 말구. 아빠 몸 건강히 지내고. 술많이. 먹지말구. 몸 건강히 있어. 미안해 아빠-석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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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으며 솔직히 웃음도 나오고 측은하기도 하고 웬지 모를 부아가 솟는군요.
이번 일이 녀석에게 반성할 기회와 자신을 추스리는 시간이 된다면 오히려 더 좋은 일이겠지만-

채목사님, 이때 애에게 필요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란 걸 알고 계시죠.
나오면 또 언제 봤냐며 교회에서 얼굴이 안보여도 어려운때 한 녀석의 언덕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부하지 않을까요.


박우물의 스무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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