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물(둘째형)
어머니와 엘리베이터
종이인형 꿈틀이
2001. 3. 15. 21:05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어디 있더라?"
아버지는 새벽에 일어나면 어스름이 걷히지 않은 방안을 더듬어서 라디오를 찾아 이리저리 주파수를 찾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잡음 많은 그 라디오, 건전지가 다 닳으면 금방 바꿔야 했던 고물라디오 하나로도 세상 참 좋아졌다고 말씀하셨다.
전기가 들어왔다. 건전지 없이 플러그만 연결하면 라디오는 쉼없이 소리와 음악들을 쏟아내었다. 어머니는 김말봉의 찔레꽃 드라마를 즐겨했다.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당연히 텔레비전이 있는 집은 저녁마다 연속극을 보려는 사람들로 메워졌다.
6학년때 우리 집에도 흑백TV가 방 윗목에 놓여졌다. 바람에 안테나가 흔들리면 덩달아 영상마저 이그러져 결정적인 장면들을 놓쳤지만 세상이 빠르게 변해간다고 느꼈다. 칼라TV의 출현은 더더욱 놀라운 감탄사였다.
선풍기, 쿠커, 헤어드라이어, 전기다리미 등은 그래도 문맹자들도 다루기 쉬운 생활의 이기였다. 그런데 가전제품들이 조금씩 다기능화가 되면서 당황스런 일들이 발생하였다. 냉장고 온도를 조절 못하여 냉장실 음식이 얼어버리고, 막상 냉동되어야 할 보관품이 해동되는 일이 생겼다. 물론 눈이 어둡고 기계 사용이 버거운 시골 무지랭이 할머니, 할아버지들만의 이야기로 치부될 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 뒤에 '∼맹'자가 붙는 것이 쉽게 쓰인다. 선천적인 것이니 색맹은 열외로 치고 지식의 유무나 교육기회의 균등으로 보면 문맹이란 말이 가장 빈도수가 많을 듯 하다. 요즘은 컴맹, 더 세분화하여 넷맹. 휴대전화 부가기능을 이용치 못하는 폰맹까지 등장했다.
어떤 연유로 상업성을 잃어버린 오금동 지하상가에서 학부휴학 후 어머니와 둘이 거하게 되었다. 이왕 비어있는 공간이니 여기에서 밥장사라도 해보라는 소개로 있게 된 곳이었다. 오로지 슈퍼 하나만 달랑 남아 있었는데, 그것도 배달 위주라 사람들의 출입이 없어 대낮에도 칙칙한 느낌을 주었다.
상권이 무너진 이유가 다 있었겠지만 한사람의 인건비도 안나오는 그곳에 마냥 머무를 수 없어 나는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고 어머니는 잡다히 밥과 분식을 파셨다. 딱히 먹을 데가 마땅찮은 사람이 하나 둘 들르기도 하였지만 그것도 점심 전후로 잠깐의 반응이었다.
"왜 그러고 있는가?"
일을 마치고 들어오니 어머니가 지쳐있는 모습이 너무도 확연하다. 사연인즉,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가 지나가다가 들깨칼국수를 맛보고 극찬을 하더란다. 그리고 이틀 후에 동네 노인들 모임이 있는데 꼭 그맛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열 두그릇인가 주문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먼저 주문한 것까지 처리하다보니 어머니는 맘만 급해지시더란다. 근력도 별반 없는 사람이 거푸 세 번을 11층까지 오르내리며 배달하고 나니 그렇게 파김치가 되었다고 말한다.
"아니 아파트 배달이 더 쉬운데 왜 그래요."
"말도 마라. 1층부터 걸어서 꼬박 11층까지 세 번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그릇 찾으러 두 번을 더 오갔더니 삭신이 말이 아니다."
"무슨 소리여요? 걸어서 올라가다니?"
"내가 그 엘레베… 뭔가 하는 것을 타봤어야지"
"……"
그랬다. 어머니가 시골생활을 접고 성남에서 이모네 식당 일을 몇년 동안 거들어주었지만, 주변에 아파트도 드문데다 가볼 일도 없고 재래식 모란시장이나 다니신 지금까지의 모습으론 어머니에게 엘리베이터는 단지 겁나는 문명의 기계일 따름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울컥 올라오는 무엇이 있어 여태껏 무엇을 했냐며 불뚝 성을 부리고 바깥으로 나와 눈가를 훔쳐야 했다.
지하철 에스켈레이터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서있는 늙수그레한 할머니가 보인다. 어지럼증이 나서인지 몸이 맘대로 따라주지 않아서인지 모르지만 팔을 거들어 밑에까지 내려드렸다.
내게도 앞으로 어떤 ∼맹 수식어가 따를 지 모르겠다. 점점 좋은 기계가 나오고 편해진다는데 과연 휴먼테크라는 광고 속 카피들이 얼마만큼 우리를 지켜주고 함께 할 것인지.
- 박우물이 열두번째 퍼 올린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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