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뫼지기(큰형)
지네와 닭
종이인형 꿈틀이
2003. 6. 16. 15:27
*** 지네와 닭 ***
주일예배를 마치며 교인들과 인사를 나눈 후 밖으로 나오자
아이들은 먼저 차에 오르려고 승합차로 달려간다.
중학교 1학년인 남석이가 앞자리에 타기 위해 차 앞문의 손잡이를 잡고 있고
그 뒤에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아들 서진이가 있다.
남석이가 먼저 차에 도착해 있지만 서진이는 목사이자 운전기사인 아버지의 빽(?)으로
앞자리를 차지할까 싶어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일에도 공평해야 하기에 먼저 온 남석이를 앞자리에 태웠다.
주일예배는 어른뿐만 아니라 초동학생을 비롯하여 중고등학생까지 같이 드리는데,
예배 후에 장년부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조금 늦게 나오면
아이들은 서로 승합차의 앞자리를 타려고 이처럼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다.
막 차를 출발하는데 조수석의 바닥에서 손가락보다 기다린 지네가 스멀거리며 나타나더니
남석이의 발등에 오르는 것이다.
남석이가 기겁을 하며 발을 치우자 지네는 남석이의 엄지발가락을 물고 재빨리 달아나 버렸다.
남석이는 고통스런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지네가 어쩌다 차안에까지 들어왔을까?
우리집은 지네가 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집 어귀에 고목이 된 밤나무가 있고,
텃밭에는 닭들이 있어서 닭뼈를 좋아하는 지네가 살기에 안성맞춤인 것이다.
예전에는 닭들을 마음껏 놓아기르기 때문에 지네 같은 벌레를 잘도 찾아서 먹어치우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닭들이 정원이나 채전밭의 피해를 주기 때문에 우리에 가두어 키운다.
지네는 닭의 뼈를 좋아하고 닭은 지네를 좋아하는 서로 먹고 먹히는 자연의 오묘한 상극(相剋)을 보니
우리 인간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지네에 물리면 얼마나 고통스런지 잘 알고 있다.
몇 년 전에 아들 방에서 잠을 자는데 몸 위로 뭔가가 기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를 털어내기 위해 손으로 더듬거리는데 주사에 찔린양 심한 통증이 왔다.
얼른 일어나서 불을 키고 살폈으나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아픈 부위는 벌겋게 부었고, 무엇엔가 물린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지네에 물린 것으로 판단했다.
그동안 지네에 물린 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그 고통 또한 처음 느꼈다.
자라면서 사나운 벌과 독쐐기에도 쏘였지만 이처럼 심한 고통은 없었다.
한 시간정도 지나자 고통이 사그라졌고 나중에 지네를 발견하게 되었다.
남석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프다고 징징거렸지만 난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며 위로를 하였다.
그때 함께 타고있던 수정이가
'우리 할머니는 지네에 물려서 죽을뻔 하다가 닭 벼슬 때문에 살아났어요'라고 말했다.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민간요법에 지네의 독은 닭 벼슬의 피로 해독을 한다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서울에서 살다가 귀농한 부모님을 따라 시골생활 삼 년 째인 수정이는
할머니의 지네에 물린 것을 보았던 것이다.
우선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남석이는 다시 교회로 데리고 왔다.
가위를 가지고 닭장에 들어가니 닭들은 먹을 거라도 주는 줄 알고 모여들었다.
그 중에서 벼슬이 좀 큰 닭을 잡아서 벼슬을 가위를 대니 피가 한두 방울 나왔다.
놀란 닭은 비명도 못 지르고 다소곳이 몸을 맡기고 있었다.
닭 벼슬의 피를 남석이의 발가락에 바르니 신기하게도 붓기가 가라앉으며 통증이 사라졌다.
과연 지네의 독에는 닭의 피가 특효임을 증명해 주었다.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지네소탕작전을 펼쳤다.
차 안의 조그마나 틈새에 숨은 지네가 고분하게 나올 것 같지 않아 독가스(에프킬라)를 뿌렸다.
지네가 사람에게 독을 주었으니 사람이 만든 독을 톡톡히 보여준 것이다.
그러자 꼭꼭 숨어있던 지네가 허둥대며 나왔다.
우리는 그 지네를 잡아서 가위로 반 토막을 내어버렸다.
그리고 얼떨결에 피를 제공한 닭에게 동강 난 지네를 던져주니 후닥닥 달려들어 한 입에 삼켜버렸다.
자연에는 독이 있는 반면 그 해독도 있다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체험했다.
극심한 고통을 준 지네의 독을 닭의 피 한 방울이 해독(解毒)한다면,
죄(罪)로 인한 영원한 독(毒)을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寶血)이야말로.....
-활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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