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인형 꿈틀이 2000. 11. 22. 11:04


꿈을 꾸었다.

내 몸은 암초에 부딪힌 목선처럼 서서히, 끝없이 잠겨들었다.

몸통, 팔다리 이윽고 머리마저 물에 잠기어 봉돌에 매달린 찌처럼 가라앉았다.

물에 잠기는 것은 공중에 떠있는 것과 같아,

허우적거리는 몸놀림은 하늘거리는 날갯짓이었다.


물은 내 몸을 떠받쳐서 오히려 가볍게 하지만,

알 수 없는 인생의 추는 자꾸만 내 발목을 잡아당긴다.

발버둥쳐도 소용없는 꿈속에서의 달아남.


얼마나 가라앉았을까?

또렷하던 온갖 소리들이 아스라이 멀어지고,

소라껍데기를 귀에 대면 들리던 그 소리만이 귓가에 울린다.

몸은 겹겹이 에운 물의 무게에 눌려 옴짝달싹 못해

언 개울의 돌 밑에서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처럼 굼뜨다.


팔다리를 늘어뜨리고 눈을 감았다.

물은 부드럽지만 둘둘 말린 이불 속처럼 갑갑하다.

어릴 적, 엄지 검지로 집게를 만들어 코를 틀어막고

물먹은 병처럼 저수지 바닥에 가라앉은 그 느낌일까?

물 밖의 또래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난 깊고 어둔 바다 속에 빠져드는 것처럼 아득히 멀어진 느낌이었다.

어쩜, 그보다도 훨씬 더 이전의 때,

햇볕을 보기 전인 어머니 뱃속인지도 모른다.


도무지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있었다.

지금, 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다.


-종이인형-



============= 토박이말 풀이 ==================

* 가위 : 꿈속에 나타나는 무서운 것.

* 굼뜨다 : 동작이 몹시 느리다. ↔날래다.

* 봉돌 : 낚시가 물 속에 가라앉도록 낚싯줄에 매다는 작은 납덩이나 돌덩이. 낚싯봉. 봉.

* 아득하다 : (물체가)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상태에 있다.

* 옴짝달싹 : 몸을 아주 조금 움직이는 모양. 꼼짝달싹.

* 찌 : 물고기가 낚시를 물면 곧 알 수 있도록 낚싯줄에 매달아 물에 뜨게 한 물건. 낚시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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