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뫼지기(큰형)

잔디마당

종이인형 꿈틀이 2002. 9. 27. 13:16

< 잔디마당 >


시골집의 마당은 여러모로 사용되는 공간이다.

오곡백과를 추수하는 말짱한 가을에는 잘 익은 것을 뽐내는 고추, 콩, 깨 등을 멍석에 너는 곳이다.

논에서 볏단을 가져와 수동 탈곡기로 나락을 훑어서 볏짚을 쌓아 놓으면 넓은 마당도 좁아 보인다.

가을걷이가 지나면 마당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풀이 자랄 틈이 없다.

마당에 금만 그으면 땅따먹기, 오징어놀이, 뱀놀이 등의 놀이마당이 되고,

딱지치기, 술래잡기, 제기차기 등도 펼쳐지는 곳이다.

집안에 애경사가 있는 날이면 마당은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천막 치며 멍석을 깔아 손님 맞을 자리를 만들고, 한 켠에서는 돼지를 잡으며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들은 비좁은 틈바구니 사이로 쏘다니며 논다.


시대가 달라지며 시골집 마당의 기능은 점점 단순해졌다.

텃밭, 창고, 비닐하우스 등이 자리하고,

차량이 있는 집에서는 딱딱한 콘크리트를 깔아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이곳에 자리를 잡던 10년 전, 3년이나 빈집으로 있었던 이곳 마당엔 잡초가 널브러져 있었다.

잡초를 제거하며 마당을 가꾸던 차에 마침 처가동네에서 서양잔디를 주어 마당에 심었다.

일반 잔디와는 달리 촘촘하고 부드러운 그 잔디는 시골마당을 새로이 단장했다.

처음 잔디를 군데군데 심어 마당이 머리털처럼 다 덮이기까지는 이태 가량이 걸렸다.

집과 교회를 짓는 과정에서 파헤쳐지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제 마당은 서양잔디와 한국잔디가 서로 다투듯 자리매김을 단단히 하며 정원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잔디를 가꾸는데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보기엔 아름답지만 거기에는 그만한 수고와 정성이 따르는 것이다.

마치 여성이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정성스레 단장을 하는 것과 같다.

분명 잔디만 심었는데 웬 잡초가 그리도 많은지, 조금의 틈만 있으면 잡풀이 비집고 나온다.

옛날 어른들의 말처럼 악착같은 잡초와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잔디밭이 말끔하지만 달포만 손길이 가지 않으면 듬성듬성 잡초가 생길 것이다.

오며가며 보이는 잡초를 원수 만난 양 뽑으니 성경의 씨뿌리는 비유가 떠오른다.


마음밭에 좋은 씨를 뿌려야만 좋은 열매가 맺는데, 잡초는 심지 않아도 잘 자란다.

이는 잡초의 씨가 이미 흙 속에 있었거나 바람에 실려왔거나 동물에 묻어 왔을 것이다.

잡초가 크게 자라기 전에 뽑아야 계속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사람의 마음마다 정원이 있다.

좋은 씨를 뿌리고 잘 자라도록 돌봐야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런데 잡초같은 나쁜 씨가 끊임없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온다.

스치는 생각들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생각이 마음에 자리잡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할 일이다.

마음의 정원을 어떻게 돌보는 것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질 것이다.


마당에 잔디가 있으니 비 오는 날에도 신발에 흙이 달라붙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흙먼지가 일지 않고, 땡볕이 내리쬐어도 지열이 덜하고,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기에 좋은, 그야말로 잔디는 사철 내내 마당의 이불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좋아한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으니 큰애는 가끔 맨발로 배드민턴을 하고,

막내는 친구들과 잔디밭의 곤충을 잡으며 재밌게 논다.


언제부턴가 이웃집에서도 한두 집 마당에 잔디를 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먼저 하지 않으면 새로운 시도를 꺼리는 시골에서 교회가 좋은 영향을 미치기에 보람이 든다.


오늘도 새로 마련한 잔디밭에 쪼그려 않자 잡초를 뽑으니

지나가는 이웃 어르신이 제초제를 뿌리면 잡초가 나지 않는다고 일러준다.

나도 모르는바가 아니지만 고집스럽게 농약사용을 금하고 있다.

생명을 살리겠다고 여기에 내려왔는데

모두를 다 죽이는 농약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양심이 허락지 않는다.

조금 힘들고 불편해도 손으로 제초하는 것이 잔디에게 더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했다.


-활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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