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뫼지기(큰형)

사람을 키우며 나무를 키우며

종이인형 꿈틀이 2005. 6. 21. 21:20

사람을 키우며, 나무를 키우며…….


활뫼교회(弓山)는 활처럼 구부러진 산이 둘러있고 그 가운데 경사진 모양대로 집들이 있고, 마을 앞에는 넓은 호수가 펼쳐져서 아늑함과 평온함을 느끼게 해준다.  
동네는 가운데 밭을 기준으로 앞에서 보면 두 동네로 보인다.
입구 쪽을 ‘모태’라고 부른다. 마을에 들어서면 산모퉁이를 돌아서야 하는데 모퉁이가 변하여 ‘모태’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 반대쪽은 ‘밥물’이라고 부른다.

‘모태’쪽 가운데에 자리 잡은 교회당은 한창 푸른 나무로 가려져 보일 듯 말 듯 한다. 도로 앞에는 건물높이만큼 자란 벚나무로 둘러있고, 옆에는 전부터 심어진 감나무들이 집을 감싸고 있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지금까지 영혼을 키우며 아울러 틈틈이 심어 놓은 온갖 나무와 꽃들이 이제는 교회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꿔놓고 있다.
약 100여 가지 이상의 화목들의 이름만 다 알려고 해도 상당한 지식이 필요했다. 어떤 것은 정확히 이름도 모른 체 키우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알았다가 잊어버리기도 한다.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이름이 있어야 하고 그 이름은 그 가치를 담고 있다. 성도들의 이름은 수가 적고, 또 자주 만나며 기도해 주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말 못하는 식물은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나의 관리를 받으면서도 모를 때가 있다.

이름을 안다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곧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다. 무엇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작품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하나 되어 동참하며, 같이 즐거워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최초의 사람에게 시키신 구체적인 일이 이름을 짓는 일이다. 이름을 지으려면 나름대로의 특성과 모양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수천 년을 지나오며 누군가가 지어준 이름을 알아가는 것으로 만족을  누린다.

텃밭과 교회당 대지를 합쳐 사백 평으로 그리 크진 않지만, 그 안에 더불어 사는 여러 식물들의 이름만 다 알아도 큰 유익이라 생각하고 올 해들어 새롭게 시도한일이 있다.
교회당 뒷벽에 꽃게시판을 만들고 교회정원에 피는 꽃들을 사진에 담아 이름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주마다 새로운 꽃과 이름을 알다보면 자연스럽게 꽃에 지식과 관심을 가지리라 여겼다.
실제 보는 것보다 디카로 정밀하게 찍은 모습은 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나무들에게는 이름표를 매달았다.
같은 종류의 여러 나무는 제외하고 한 종류의 나무들에게 이름을 달아서 누구든지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일을 하다보니 성도들의 수와 나무 종류가 비슷했다.
문득 스치는 생각이 성도들의 이름을 나무이름과 같이 붙여놓고 관리할 때마다 그 성도들을 위해 한 번 더 기도하자는 생각이었다.
사실 나무나 사람이나 같은 생명이라는 공통점에서 키우고 돌봐주며 정성과 사랑이 주어야 할 존재들이다.
오히려 나무를 키우며 더 중요한 성도의 영혼을 상대하는 좋은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즉시 실천에 옮기며 이러한 취지를 성도들에게 알리고 어린 학생들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각자 좋아하는 나무를 정했다.
그리고 오고가며 자기 나무에게 쓰다듬고 축복하는 말을 하라고 했다. 성도들의 반응이 아주 좋으며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새로운 성도가 오면 또 새로운 이름표를 달아주면 된다.
세월이 흐르면 나무는 좀더 멋있는 나무로 자랄 것이고, 같이 커가는 아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이 되리라 여긴다.
이제 이 땅에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은 나무를 통해 겉사람은 후패해도 속사람이 날로 새롭게 되는 의미를 깨달으리라 본다.

나무를 관리하는 일 중 가장 많은 손질은 불필요한 잎과 가지를 다듬어 주는 일이다. 그래야만 관리자가 원하는 형상과 열매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의 포도나무 비유처럼 성도들의 영적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도록 농부 되신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성도들의 수가 더할수록 나무들도 더하며, 성도들이 성장할수록 나무들도 가치가 높아지길 기원하며 행복한 정원지기의 일을 한다.

-활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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