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뫼지기(큰형)
고추 심는 날
종이인형 꿈틀이
2005. 5. 18. 00:09
주 오일 근무제의 일환으로 학교도 매주 마지막 토요일은 가정학습으로 보낸다는 학교방침에 따라 우리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않았다.
농촌에 살면서도 일 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근본된 흙을 밟으며 먹거리를 생산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학교 공부 못지않은 중요하고 필요한 체험이라 생각한다.
필자가 학교 다닐 때는 따로 농사체험 할, 아니 이러한 단어 자체가 없었다.
학생의 신분이지만 고양이의 손도 빌린다는 농번기 때는 결석하면서까지 농사일을 도와주었고, 학교에서도 대민봉사로 자주 들녘에 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이런 일들이 당연시했고 그래야 되는 줄로 알았다.
지금이야 다양한 농기계 보급으로 적은 노동력으로 많은 농사를 짓는 시대가 되었다.
농사 하면 힘든 일이라고 대명사처럼 여겼지만 이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면만 바라본 것이다. 오늘날 정말 힘든 일은 농사보다 더 많은 다양한 도시의 노동이라 여긴다. 농사는 그래도 마음이 편하고 여유가 있으며 쾌적한 환경에서 일한다. 시골에서 살아보니 농촌 주민들이 도시인들보다 여러 면에서 편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청소년시절 마냥 놀기만 좋아하는 시절에 부모님의 강압적으로 시키는 일이 힘들고 싫었던 기억이 생각난다. 여러 가지 농사일중에 가장 힘들었던 일은 저녁에 논에서 볏단을 옮기는 일이었다.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그 동안 건조시킨 볏단을 거두어야 했다. 비를 맞으면 다시 건조해야 하며 자칫 애써 지은 농작물을 썩힐 수도 있었던 것이다.
신발이 푹, 푹, 빠지는 논바닥을 맨발로 수없이 다니었다. 춥고, 졸립고, 껄끄럽고, 무거운 볏단을 옮기며 인생이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가(?). 라는 철학적 질문을 하며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바랬다.
어른들이 늘 하는 말 ‘눈은 게으르고 손은 부지런하다’ 는 말이 있듯이 어느덧 그 많던 볏단들이 논둑에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일을 마치고 한 밤중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람도 느끼며 달콤한 잠을 따뜻한 이불속에서 잠드는 즐거움을 생각하며 터벅터벅 걸어왔던 일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아버지는 일을 시키면서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장차 써먹던 안 써먹던 일은 배워놓아야 한다’ 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농촌목회를 하며 늘 감사하는 것은 힘들고 짜증나던 청소년 시절의 농사체험이 지금에 와서는 많은 유익으로 거두고 있음을 늘 느낀다.
단순히 일하는 방법뿐 아니라 모든 삶의 지혜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험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물려주고자 기회를 따라 일을 시켰다. 마침 부모님이 해마다 하는 고추농사를 올해도 조금 하신다.
삼남매와 나까지 동원하면 여느 일꾼들 못지않은 작업조가 되리라 여겼다.
아이들에게 농사체험을 해야 할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였다.
첫째는 조부모님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므로 효도하는 것이고, 둘째는 농사일을 배우는 학습이고, 셋째는 장차 무슨 일을 하든 농사체험이 모든 직업에 귀중한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을 해 주며 싫어하는 이들을 달래었다.
중학생인 큰아들 지원이와 딸인 미리내와 초등학생인 서진이에게 각기 일을 분담하고 밭으로 나섰다.
아이들은 거절은 못하면서 못마땅하다는 듯 입들이 삐죽이며 말없이 시키는 대로 따라 주었다.
동네와 저수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일에 흥미가 있었던지 어느 듯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부르며 맡은 일에 열심을 다했다. 고추를 본 밭에 옮기며 구덩이를 꽃삽으로 파서 모종을 넣고 호수로 물을 주고 나서 다시 고추가 반드시 세워지도록 손질하고, 그리고 비닐을 온 식구가 달려들어 씌우면 낮은 기온에 일단 안심이 된다.
이 작업이 끝나면 관리기로 양 옆에 흙을 북돋아 주는 일은 기계를 담당하는 내가 처리하는 것으로 모든 과정을 마친다.
시간이 되어 새참으로 어머니가 즐겨 쑤는 영양식인 녹두죽을 먹었다.
어린시절 부모님이 남의 일을 하면 그 근방에서 또래들과 놀다가 새참을 얻어먹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어른들은 일하느라 시장하지만 아이들은 뛰어놀기에 배고팠던 것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시야에 들어오는 이웃 사람이 혼자 일하면 기어이 불러서 같이 참을 나누는 시골의 정다운 인심을 나눴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풍습은 이어지지만 모든 것이 풍족한 요즘은 과식(過食)할까 절제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조금 넘었지만 모든 일을 다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각종 농기구를 챙겼다.
이웃집에서 객지에 나간 자녀들이 한번씩 와서 일을 도와주는 것을 부러워했던 어머니는, 아이들이 제법 한 몫을 하자 기분이 좋으신지 용돈을 각자 나눠주었다. 아이들도 힘은 들었지만 성취감을 느끼며 생각지 않은 용돈까지 받자 기분이 좋은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아내가 준비한 점심을 먹으면서 흙과 함께 흘린 땀의 소중함과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신성한 노동의 의미를 아이들은 나름대로 느꼈으리라 여긴다.
먼 훗날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보듯 자기 자녀들을 볼 때쯤에는 오늘의 농사체험이 얼마나 소중한 추억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감사와 아울러 나와 똑같이 아이들에게 삶의 체험을 시킬 것이다.
아무리 가르쳐도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세월이 흘러야 여무는 열매처럼 알게 되는 지혜는, 비단 이 뿐 아니라 우리네 삶의 곳곳에 스며있다.
그렇기에 조급하거나 쉬 단정하지 않고 기다리며 보살펴주고 다양한 가르침을 심어 주는 일이 보호자의 의무라 여긴다.
-활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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