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뫼지기(큰형)
마늘의 머리
종이인형 꿈틀이
2002. 6. 14. 16:52
<마늘의 머리>
예전엔 농번기가 되면 하도 일손이 모자라서 결석을 하면서까지 농사일을 도왔었다.
그에 반해 지금은 모내기가 얼마나 간편하고 빨라졌는지.
논에서 못자리가 사라지고 지금은 하우스 안에 볍씨를 뿌려 열흘만에 모내기를 한다.
트랙터로 논을 다듬고 이양기로 모를 내면 한 나절이면 웬만한 집에서는 모내기를 마치는 시대이다.
잔칫집처럼 북적거리며 흥겹던 모내기, 이웃 사이에 오가는 정겨운 품앗이와 새참도 이제는 거진 사라졌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흙사랑 체험학습'이라는 가정학습이 있다.
농촌에 살면서도 농사일을 할 기회가 없는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농사일을 경험케 하는 것이다.
이젠 시골에서도 학생들에게 농사일이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이라기보다는 학습의 한 방법이라니 시대가 참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학생시절엔 농사일이 왜 그리도 지겨웠던지.
힘들고 짜증스런 기억들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경험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유익한 것이었다고 여긴다.
젊은이들이 자꾸만 농촌을 등지고 떠나는 것이 농촌의 가장 큰 어려움인데,
이는 힘들게 농사일을 해도 그만한 대가를 받지 못한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는 대안의 하나는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이를 이룰 수 있는 아주 좋은 환경이다.
하나님이 지은 지구를 고스란히 보존하는 것이 신앙적인 농법이라 확신하며 때때로 교인들과 주민들을 설득했으나
오랫동안 길들어진 그들은 여전히 각종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보다는 직접 실천하며 보여주기로 생각하고 교회 앞 텃밭에다 마늘을 심었다.
마늘농사에 있어 가장 힘든 것은 '고자리파리'의 피해이다.
애벌레가 마늘의 비늘줄기를 가해하는 바람에 너도나도 토양살충제를 살포하는데,
어떻게 하면 고자리파리를 자연적인 방법으로 막을 수 있을까 궁리하던 중에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고모님은 구십포해수욕장 부근의 바닷가 마을에 사시는데,
아버지는 고모댁에 갔다오실 때마다 마늘을 얻어오시는 것이었다.
그때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던 시대였다.
그 기억을 하던 중에 소금기가 있는 바닷가의 흙이 고자리파리를 방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닷가의 모래를 마늘밭에다 비료처럼 뿌린 후에 지켜보니 과연 고자리파리의 피해가 생기지 않았다.
올해도 마늘을 거두었다. 흙사랑 체험학습기간을 강조(?)하면서 아이들을 달래 같이 마늘을 캤다.
처음엔 미적거리더니 막상 일을 시작하자 아이들이 한 몫을 톡톡히 해낸다.
처음 마늘을 캐보는 여덟 살배기 막내(서진)가 '어, 마늘에도 머리가 있네?'라고 말하며 신기해 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마늘이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둥그런 모양에 흰 뿌리가 머리카락처럼 보였다.
어른들은 미처 느끼지 못한 것들을 아이들은 느낄 수 있나보다.
한 삽을 뜨면 겨우내 땅속에서 알차게 영근 마늘들이 아이가 태어나듯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덩달아 흙의 일꾼인 지렁이도 꿈틀거리며 나온다.
아이들은 지렁이를 잡아서 닭장에 넣어준다.
주인의 아들인 것을 알리 없는 거위란 놈이 목을 길게 빼며 울타리로 달려드는 바람에
깜짝 놀라 달아나면서도 연신 깔깔거리며 지렁이를 날라준다.
나는 지렁이가 얼마나 유익한 동물인지를 설명하며 지렁이의 배설물을 보여주었다.
"애들아! 이 똥글똥글한 것이 지렁이 똥이란다. 이 똥은 거름 중에 최고이지. 지렁이는 흙을 먹고 그만큼 똥을 싸는데 이것이 바로 그 흙똥이란다.
가만히 얘기를 듣던 서진이가 나름대로 안다는 듯이 한마디를 했다.
"아! 그러니까 여기가 지렁이 화장실이구나."
- 활뫼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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