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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어른은 홀로서기

종이인형 꿈틀이 2020. 4. 3. 08:34

[28일] 어른은 홀로서기

(2020. 3. 23. / 나이듦에 관하여)

 

산에 갔었다. 산 속의 나무에서 매미 애벌레의 허물을 보았다. 매미는 거기에 없었다. 허물벗기를 한 매미는 더 이상 애벌레가 아니다. 6~7년 동안 땅속에서 지내다가 때가 되어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된 것이다. 때가 되면 애벌레가 탈피하여 성충이 되듯, 사람도 때가 되면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

누에가 네 번의 잠을 자며 부쩍부쩍 자라듯이 아이들은 이태만 지나도 옷이 몸에 맞지 않아 새옷을 장만해야 할 정도로 쑥쑥 자란다. 하지만 1령의 누에나 5령의 누에가 마찬가지로 애벌레이듯 몸집이 커진 아이도 여전히 아이일 뿐이다. 5령의 누에가 번데기를 거쳐 나방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어른인 성충이 된다.

 

사람은 언제 어른이 될까? 스스로 설 수 있을 때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나이 스물이면 몸도 다 자라고 철도 들 나이이기에 어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스물이 되어도 스스로 서지 못한다면 어른아이다.

스스로 선다는 것은 몸집이 크고 자기 뜻대로 사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생활, 즉 경제적인 독립까지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스물이 아니라 서른이 되어도 부모의 젖을 떼지 못하는 어른애가 많다.

예전과는 달리 공부하는 기간이 길어져 20대 중반까지 학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나이 스물이 지난 자식이 별 거리낌 없이 부모로부터 계속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을 하는 것과, 또한 부모도 자식에게 경제적 지원을 마다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거듭남은 홀로서기다. 홀로서기의 첫걸음은 부모로부터 독립이다. 스스로 서기 위해서는 자신을 보호하던 껍데기를 벗어버려야 한다. 어린 시절에는 껍데기가 생명을 지키는 보호막이 된다. 가을의 씨앗이 추운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는 것도 껍질이 배를 감싸주는 덕이다. 하지만 때가 되면 껍질을 벗어야 한다. 봄이 되면 씨앗 속의 배는 씨껍질을 뚫고 배아를 틔운다. 만약 껍질을 계속 뒤집어쓰고 있다면 그 씨앗은 죽은 씨거나 자랄 생각이 없는 씨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며 또한 죽음을 확인하는 계절이다. 겨울에는 어느 나무가 죽고 살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봄이 되면 알게 된다. 봄이 되어 나무들이 잎눈과 꽃눈을 뜨며 싹을 틔우는데도 겨울나무처럼 고즈넉이 서있는 나무는 죽은 나무이다. 봄은 추수철에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듯 죽음과 생명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봄엔 눈을 떠야 한다. 딱딱한 땅거죽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제비꽃을 누가 연약하다고 말하랴! 잎이 나고 꽃을 피워 씨를 맺어 퍼뜨리는 것이 야생초 삶의 목표다. 민들레의 한 씨가 수백의 민들레로 거듭남은 씨앗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해는 매일 아침마다 거듭난다. 오늘 해를 어제 해라고 우기지 말자.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듯 우리는 매일 잠을 깨며 시나브로 자란다. 진정한 젊음은 누에처럼 매일 자라는 것이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말이다. 뽕잎을 먹듯 책을 읽고, 개미처럼 부지런히 움직이고, 공짜는 부모가 주는 것이라도 거절하고, 넘어지면 오뚝이처럼 바로 일어나는 것, 스물 넘은 젊은이의 어른다운 모습이다.

 

이제 갓 20대가 된 어른의 홀로서기, 참 힘들다. 청년실업이 늘어나고, 일자리는 바늘구멍이다. 국내외적으로 경제상황은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미래는 오리무중이다. 어제 낸 이력서는 면접관 눈길을 못 받고, 달포 전 응시한 시험은 또 낙방이고, 봐야 할 책은 많은데 시간은 없고,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은 물건 하나 사면 호박씨 까먹듯 한 입에 사라지고, 오를 나무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른이 되기보다는 그냥 아이로, 학생으로 계속 살고 싶은 맘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세대를 잘못 타고 났다고 하소연 할만도 하다. 그러나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금 이 세대를 살고 있지 않는가? 흐르는 강물의 연어는 거친 물살을 거스르며 헤엄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떠내려간다. 어른이 될 즈음에 거친 물살을 만났다고 해서 강 오르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이십대를 돌이켜본다. 스물이 되기 전부터 공장생활을 했고, 뒤늦게 대학을 가기 위해 진학공부를 했지만 떨어졌다. 군대를 다녀온 후에는 마땅히 머물 곳이 없어 신문보급소에서 생활했고, 공무원시험을 여러 번 응시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실망스러웠으며 연애조차 마음에서 비우고 살았었다. 우울했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할 일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기에 시간이라도 더디 가길 원했으나 세월조차 외면하여 금새 이십대가 지났다.

이십대의 나이는 아이를 탈피하여 어른이 되는 시기이므로 스스로 자기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강한 시기다. 갓 껍데기를 벗은 어린 새처럼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이다. 그래도 껍데기는 깨치고 나와야 한다. 젊은이는 아이가 아닌 홀로서기가 가능한 어른이기 때문이다.

지금, 어렵다!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이 세대를 탓하지 말자. 부모를 탓하지도 말자. 스스로 지금의 현실을 감당하자. 젊은이는 어른이다. 홀로서기가 가능한 어른이다. 세한도의 소나무처럼 이 겨울을 꿋꿋하게 견딜 수 있는 어른인 것이다.

 

https://youtu.be/BwP4r3lH9g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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