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물(둘째형)

관 뚜껑을 닫을 때

종이인형 꿈틀이 2000. 7. 19. 02:07
* 관 뚜껑을 닫을 때 *


십년 정도 된 이야기 같네요.
제가 예전에 성남에 살던 때로 시계를 돌려 보죠.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성남은 공장이 많고, 소위 말하는 생산직 직원이 많은 곳입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자마자 곧바로 휴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문을 두드린 곳이 육가공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큰 정육점이라고나 할까요.
지게를 지고 살아온 저였지만 그 일이 육체적으로 다소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계통에서는 야간잔업이나 휴일 특근수당이 낮 시간때보다 더 높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대부분 말만 정상퇴근이지 일이 많을 때는 예외없이 야간잔업에 동참 한답니다. 저야 아르바이트생이라는 특권 때문에 눈치를 안보고 저녁때쯤 퇴근하는데 일의 바쁨에 상관없이 저와 함께 퇴근을 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인상만 봐서는 고시생처럼 보이는 검은 뿔테의 사내였답니다. 가정이 있는 아주머니들까지 일하는 판에 건장한 사내가 공장문을 나서니 회사에서는 별반 마뜩찮았나 봅니다. - 팀장의 표정이 말해 주더군요.-
팀장은 우리가 계속 정상퇴근을 해도 말을 안 하다가 어느 날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제가 있는 곳에서 드러냈습니다.
"어이. 돈 많이 벌어났어! 남들 다하는 잔업도 안 하고 퇴근하게..."
검정뿔테 사나이는 그런 말에는 이력이 난 듯 응대를 하지 않고, 되려 머뭇거리는 저를 채근하더군요.
그래도 기분은 안 좋았는지 공장을 벗어날 때까지 별반 말이 없다가
"내가 죽어 관뚜껑을 닫을 때 혹 돈 못 벌었다는 후회를 할 수 있지만, 그 후회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못하고 죽었다는 후회를 더 하고 싶지 않아서요."라고 운을 뗍니다.
"어차피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니 낮에야 열심히 일 하겠지만 밤시간 만큼은 내게 투자를 할 겁니다.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아마 그게 덜 후회되는 삶일 것 같지 않아요?"

몇 년 후, 그 사람 이야기를 공장 동료를 만나 들었답니다. 그 당시 문제가 되었던 노동운동가로 성남 공단에 침투했던 것이 밝혀져 잘리게 되었다더군요. 그것이 제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마 그때 그 사람이 뱉었던 말이 진실이라면 지금도 그는 열심히 자기 삶을 덜 후회하며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겠지요.

관뚜껑을 닫을 때 우리는 무슨 후회를 하고 또 원 없었다고 말 할 수 있을련지...

- 박 우 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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