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인형 꿈틀이
2007. 11. 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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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눈길을 달리다가 앞차가 브레이크를 잡기에 나도 브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내 차는 미끄러졌다. 하필 육교 밑이라서 빙판길이었던 것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앞차를 향해 미끄러지는 짧은 순간에 어제의 불안한 느낌이 현실로 다가온다는 생각이었다. 쿵! 내차는 앞차의 꽁무니를 들이받고 말았다. | |
예전 설 즈음의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왠지 께름칙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뭐라 꼭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불안한 예감이 감도는 것이다. 내일이면 너나 나나 설을 맞아 고향으로 갈 것이고, 나도 10년도 지난 낡은 차를 운전하고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차를 운전하고 가는 것이 영 걸렸다. 오래된 차로 장거리를 운전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당연할텐데, 단순한 기우보다는 그 불안이 너무 생생했다. 과연 이런 느낌은 뭘까? 버스를 타고 가자니 여러 가지 번거로웠다. 결국 다음날 고향에 내려갈 때까지 결정을 못하다가 그냥 차를 운전하고 가기로 했다. 꿈이나 느낌을 따라 사는 것은 미신을 믿는 것과 같다고 억지로 여기며 애써 불안을 떨어버렸다.
명절이라 차는 밀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호남고속도로에 접어드니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줄줄이 엉금걸음을 하는 차량들 속에서 나는 운전대를 신중하게 잡고 운전을 했다. 이제 조금만 가면 정읍IC를 빠져 나와 고향에 도착하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다른 때보다 더 주의하며 운전했고, 앞차와의 간격도 안정권으로 유지했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눈길을 달리다가 앞차가 브레이크를 잡기에 나도 브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내 차는 미끄러졌다. 하필 육교 밑이라서 빙판길이었던 것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앞차를 향해 미끄러지는 짧은 순간에 어제의 불안한 느낌이 현실로 다가온다는 생각이었다. 쿵! 내차는 앞차의 꽁무니를 들이받고 말았다. 앞차는 막 출고하여 임시번호판을 달고 있는 차였고, 비록 범퍼에 조금 흠집이 생긴 정도였지만 범퍼를 통째로 교체해야만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내 차는 앞부분이 심하게 찌그러졌다. 다행히 엔진은 이상이 없어 운행은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정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앞차를 따라 광주까지 가서 수리를 해주고, 생소한 국도를 따라 눈길을 헤매며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겨우 고향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자식이 온다기에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놓고 토방을 따뜻하게 해놓으셨다. 뜨뜻한 아랫목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사고와 관련하며 머릿속이 복잡하고 화가 났다. 큰 사고가 아니기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고가 일어난 것은 날 안절부절 못하게 했다. 전날의 불길한 예감은 무엇이며, 오늘의 사고는 무엇일까? 어머니에게는 심려를 끼치지 않기 위해 대수롭지 않은 척 했으나 복잡한 심경에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보통 잠을 자면 아침까지 깨지 않고 줄곧 자는데, 웬일인지 새벽에 잠이 깨었다. 뒤숭숭한 마음으로 거실로 가니 깜깜한 거기에 어머니가 기도하고 계셨다. 매일 새벽마다 일어나서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신다는 것이다. 차를 운전하지 말도록 말리는 그 예감과, 예감을 무시하고 차를 운전했을 때 비록 사고가 났지만 아주 경미했던 것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한 사고에 대한 불만이 작은 사고에 대한 감사로 바꿨다. 절로 한 찬양이 떠올랐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거울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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