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물(둘째형)

[스크랩] @음악 만들어 가기-조카와 페루살이(네번째)

종이인형 꿈틀이 2007. 5. 30. 14:07
 

@음악 배워가기-조카와 페루살이(네번째)


나와 속 깊은 2시간 반짜리 대화를 나눈 후 녀석은 자기 스스로 계획을 세워가더니 시간표까지 짜오며 본인의 계획을 서서히 짜가기 시작했다.

영어 학원을 알아서 후안기자 아들인 친구와 접수하고 다니는가 하면 이리저리 불러 다니면서 자기들끼리 그룹을 만들어 저녁에는 음악을 만들어가고, 교회 연습에도 빠지지 않고 나가 자기 입지를 굳히기 시작하였다.

집에서야 밥을 항상 해주었지만 1주에 2-3번은 나가서 제대로 외식을 하자고 동기부여에 나섰고 피곤할 법도 한데 교회에 가서 연습하는 것에는 게으름을 피지 않고 열심히 임하는 녀석이 보기 좋았다.


조카를 이역땅까지 같이 데리고 온 것은 변방의 음악이었던 안데스음악이 한국에서 내가 하는 Rail Art 일을 통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지만 한국인을 통한 체계적인 정립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에스빠뇰이 어느정도 가능하면 안데스 포크롤레에서 더 나아가 라틴음악의 보고인 쿠바나 멕시코 콜롬비아등지에서 각각의 장르-살사, 보사노바, 메렝게, 삼바, 차차차등-를 섭렵하고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서였다.

물론 부에나비에스타 쇼설클럽 같은 그룹을 예로 안 들어도 예전 3-40 여년전에 우리 대중음악에서 라틴음악은 곳곳에 배어있다.

조영남의 제비, 현인의 베사메 뮤쵸와 같은 번안곡부터 관따나 메라, 라팔로마, 시에리또 린도, 키사스키사스등 어디 한두곡인가.

그래서 본토에서 제대로 라틴음악의 단계를 밟아가게끔 하는 것이 조카를 데리고 온 목적이었다.


페루에 도착하자마자 볼만한 공연장은 애가 가야 할 곳인지 어떤지 선을 안 긋고 가급적 동료가 끄는 대로 같이 데리고 다녔다.

우리에게 ‘람바다’(현지 제목: 욜란도 세 뿌에-울면서 가네)로 유명한 볼리비아 그룹 하르까시 공연부터 우리나라로 하면 동네 콩쿨대회 같은 자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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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전통의 볼리비아 그룹 '하르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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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주말저녁은 다른 때와 달리 더 자유롭다. 아니 평소때 보다 배는 사람들이 더 풀어진다.

시끌벅적하게 맥주를 나누다가 얼굴이 다른 이방인들을 발견하는 순간 누구라 할 것 없이 먼저 춤을 추자 손을 이끌어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유달리 심한 통과의례를 치뤘던 방황의 사춘기 이후 거의 춰보지도 못한 춤을 페루에 와 그들 손에 이끌려 수없이 춘 것 같다. 그러면서 기타가 있을 때는 노래도 빼놓지 않고 하였다.

근데 조카 녀석은 그리도 몸을 잘 쓰면서 또 춤과는 영 아닌가 보다.

남들이 손을 끌면 곡이 다 끝날 때까지 스탭도 밟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죽상이다. 난 그 시간을 즐겼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춤 대신 자청해 아리랑이나 껜세라 노래까지 즐겨 하였는데 말이다.

어느 주점에 입국 전에 잠시 다시 들렸는데 손님 중에 그런 꼬레아노를 기억하고 먼저 반갑다고 아는 체를 해주는 이도 있으니 이도 국위선양에 들어갈까?


그러나 곧 나에게 주목되었던 상황들은 역전되기 시작했다.

녀석에게 야마하 키보드를-건반음계가 88이 아닌 일반 61건반짜리-사주자 악보에 표기된 음악을 죄다 표현할 수 없지만 베토벤 바이러스 같은 곡을 선보이니 조카를 보는 현지인들 눈이 달라진다.

속된 말로 뻑 가도록 기선제압을 다해버린 셈이다.

이곳의 음악풍토를 안다면 이 표현이 농담이 아님을 알 것이다.


먼저 교회에서 조카가 악보를 볼 줄 알고 피아노를 잘 친다는 소문이 들리자 바로 교회 찬양팀에서 영입을 제의하였다.

처음에는 대타로 끼어들었는데 나중에는 기존주자가 코드만 눌러주던 식으로 불편한 없이 대충 반주를 해왔다가 악보를 제대로 볼줄 아는 조카가 등장하자 본인스스로가 자리를 물려주고 나간다.

어느 순간 지원이는 카톨릭 국가에서는 큰 규모의(약 출석인원 500여명) 개신교회에서 대예배 반주자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피아노를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는 하였는데 기본적으로 집에 악기도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4성부나 분산화음을 펼치는 고난이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지 대부분 충동적으로 말을 꺼내는 것에 불과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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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연주하는 조카


“작은 아빠 살사 피아노 배우고 싶은데 크리스티앙에게 배우면 안될까요?”

처음 음악동료가 지역에서 소문난 뮤지션이라 말을 해 집을 찾아 갔다가 일방적으로 헛걸음을 시킨 살사뮤지션 이름을 언급하자 난 약속하나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 배우면 뭐하냐 하면서 다른 데 알아보자고 하였다.

녀석도 처음에는 그 사람 실력이 별로라고 자기 입으로 말한 기억이 있어서인지 보채지 않고 다른 경로로 알아보다 근처 음악학원에 살사 피아노 강사가 있다며 거기를 찾아갔다.


“갔던 일은 잘되었니?”

“참내, 내가 이 동네에서 피아노 학원을 열던지 해야지 원.”

“무슨 일인데.”

씩씩대는 표정을 지으며 들어오는 아이에게 묻다가 대답을 듣다가 나도 덩달아 어이없어졌다.

“살사는 무슨 놈의 살사요, 살사피아노는 안쳐봤다며 대신 클래식 피아노를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시범을 보이는데 이건 뭐 바이엘 수준이고.”

“그래서 어찌 됐는데.”

“그냥 말없이 지켜보다 한번 쳐보라고 해서 베토벤 곡 하나 쳐주고 났더니 바로 꼬리 내리며 미안하다 하던데요. 다른 강사를 소개해줄 수 있다고. 내가 살사 피아노 배우러 간다고 했지, 클래식은 무슨 클래식, 그리고 클래식을 가르칠 실력도 안 되면서...”

같이 따라간 후안 기자 아들도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다. 

   

가르치는 것이나 배우는 것에 일반인들은 물론 교회 청년들도 상식적이지 못한 것은 매일반인것같다.

비근한 예를 한번 들어보겠다.

“작은아빠, 그전에 피아노 치던 주자 있잖아요.”

“그래, 그 애는 이제 반주 안 한다던?”

“예, 제가 있으면 안 할 것 같아요. 그 애가 저한테 피아노를 가르쳐달라며 자기 집에 와달라고 하네요.”

“배우는 사람이 찾아와야지. 그러면 출장 레슨인데 얼마나 준다고 하던? 이곳 레슨비가 싸지만 그래도 거리상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할 텐데.
”아뇨, 그냥 무료로 자기 집에 와서 가르쳐 달라고 해요.“

“여기 사람들 왜 그러지. 아니, 시간 내서 가르쳐 주는 것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집으로 오게끔 해서까지 교육을 받으며 무료로 해달라고 하는 것이 말이 돼?”

“그러게요. 다른 청년들도 다 해주지 말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애가 못사는 애도 아니라며?”

“예. 자기보고 오라고 해야겠죠?”


몇 번씩 조카에게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사람이 있었지만 누구도 진득한 수강생은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위의 기존 반주자도 한 두번 우리 집에 들러서 배우더니 그것도 어렵다고 바로 포기를 한 것 같다.

안데스악기는 주악기가 단소의 형님같은 께나와 팬플륫을 연상하는 샴뽀냐 두 관악기가 빠져서는 힘들다.

민속피리류를 즐겨 연주하던 나와 달리 관악기에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던 조카는 그래도 중학교때 규모가 어찌됐는지 모르지만 전국 리코더대회에서 대상을 탄 이력답게 소프라노 리코더로 비발디 사계를 텅깅도 제법 하면서 소질을 보였다.

다니던 음악아카데미에서도 강사가 더 이상 가르칠 필요가 없으니 리코더 수업때는 안 들어와도 된다고 부담스레 말했다 한다.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이곳의 자국 민속 관악기는 기가 막히게 불어대는 사람들이 리코더를 기본적인 텅깅도 안하면서 후후 불어대니 악기특유의 맛갈스러움을 강사조차 전혀 못 살린다는 이야기다.

참, 그리고 이곳 사람들이 말하는 플라우따(플륫)는 우리가 말하는 실버 악기를 연상하면 낭패다.

리코더를 플라우따라고 부르면서 자기 집에 플륫이 있다고 해서 가져와보면 그런 플라스틱 리코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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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소의 형님같은 '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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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플륫과 비슷한  '샴뾰냐'

 

 


내가 자연악기를 살 때는 항상 두 개씩을 사서 그중 하나를 녀석에게 넘겼다.

그전에 따로 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안데스 전통기타이며 만돌린보다 작은 차랑고에도 관심을 가져 하나를 사주자 열심히 연습에 임한다.

문제는 안데스 음악이야 그런대로 자주 접하고 토양이 형성되어 있지만 이곳 페루 특성상 폴크롤레를 제외한 음악을 찾기는 그리 용이치 않다.

분명 축제때는 살사음악인인들과 기막히게 유연한 허리놀림을 자랑하는 댄서들이 무대를 꽉 채우면서도 우리와 접촉이 쉽지 않았다.

어쩌다 찾은 강사도 이런저런 이유로 조카의 스승이 되기에는 서로 인연이 안 되었다.


“아코디언이란 악기가 상당히 매력적이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 베이스를 눙수능란하게 쓰는 사람도 많지 않고 트롯리듬 전용악기처럼 인식이 되어 있지만 유럽에서나 러시아같은 곳에서 쓰는 아코디언 수준은 째즈와 클래식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더구나. 피아노나 키보드는 기동성이나 전기 공급이 어려울때 한계가 있으니 아코디언류중 알헨티나 반도네온을 네가 연주하면 어떨까 싶다. 내가 조만간 아르헨티나를 방문할 예정이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알헨티나에서 악기점을 뒤져 찾아내기는 했지만 감히 엄두를 못 낼 가격에 조용히 물러서고 말았고 무게 또한 만만치 않아 포기하였다.


안데스 전통 악기인 아르빠 하프는 또 어떤가.

꾸스코 지역의 악기로 안데스 잉카 옛 수도 폴크로레에서는 잘 사용되지만 지역적인 특성이 강하고 부피가 커 조카가 가용할 악기중 기동성면에서 제외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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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의 하프 '아르빠'

    

“작은 아빠, 너무 연습시간이 길어서 시간을 많이 뺏기는 데 반주자 다른 사람 알아보라고 할까요.”

어느 날 얼추 교회 연습시간을 계산한 녀석이 갈등을 하면서 꺼내는 말이다.

“물론 내가 봐도 1주 교회에서 소비되는 시간이 너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부러 학원가서 돈 내고도 말을 배울 판인데 잘됐지 뭐니.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그래도 조금은 더 너를 생각하는 아이들이 모여 있쟎니. 네가 말을 확실히 배워두고 서서히 거리를 둔다고 해도 지금은 소모성 시간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악보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이 없다며?”

“예, 알헨티나 음악대학 다니는 친구만 빼고는 모두 악보를 볼 줄 몰라요. 그 사람은 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서 악보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끝내주지만 자주 오는 것도 아니라 제가 일일이 피아노 음을 들려줘야 해요. 하긴 제가 없으면 문제가 되겠네요. 그럼 계속 봉사할게요.”

젊은이들이 너무 교회에서만 있으면 이원론적인 신앙과 사고방식으로 편협하고 독선적인 것을 그동안의 신앙경험상 많이 봐왔기에 나도 조카가 한국에서라면 녀석의 의견에 따라야 했지만 조카는 이곳 페루 아레끼빠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고 대화해줄 친구들이 필요했다고 본다.

그것은 가족이 어찌 할 수 없는 그들 또래만의 공유나 동질감의 문제라 내가 비집고 들어갈 수도 없고 부러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일요일 같으면 그 잠 많은 녀석이 토요일 오후 내내 이리저리 집회에 불러 다니다 새벽이면 후안기자 아들과 같이 어김없이 일어나 1부와 2부 모두 반주를 담당한다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문을 열고 나간다.

“야, 지원. 여기서 계속 반주하고 있으려면 교회에 피아노 기증 좀 해.”

친구들은 이렇게 말을 하기도 하였단다.

어차피 칠 사람은 조카 외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나저나 이곳 사람들 청음능력은 상당하다.

악보 보는 눈이 부족하다 보니 바로 음을 듣고 따라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발달한 수준이다.

그것은 조카도 인정하는 그네 나라 음악인들의 특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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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때도 주반주자로 활동하는 조카의 모습


“클래식을 괜히 했나봐요. 제가 청음 능력도 떨어지고 리듬이나 반주법 이런 것들에 더 눈을 떴어야 하는데 진작 클래식에만 안 매달렸으면 나았지 않았나 싶어요. ”

사람들의 청음능력이 부러웠는지 녀석이 어느날 이렇게 말을 한다.

“아냐, 작은아빠가 항상 말하지만 유명한 째즈 피아니스트들 대부분도 정통 클래식을 배운 사람들이 태반이란다. 말 그대로 기초가 탄탄한 분들이야. 파블로 피카소가 이상하게 비대칭적이고 기이한 그림을 그린다 말하지만 그의 데생노트를 보면은 그런 말 함부로 못한단다. 그 사람 정말 기초가 탄탄한 사람으로 정평을 받았거든. 요즘 한국에서도 퓨젼국악팀이 너무 많아졌지만 20여년전에 슬기둥이란 팀이 공식적으로 국악계에서 Fusion을 표방하고 나왔을 때 국악계는 물론 다른 음악인들도 처음 출범하는 이들을 우려와 질시의 눈으로 쳐다봤단다. 하지만 그분들이 정통국악에서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탄탄한 기초실력과 수상경력들을 갖췄기 때문에 시비를 못 건거였고 지금은 물론 영화음악작곡가로, 대학에서 교수로, 굵직한 도립이나 방송공사 지휘까지 모두 이 그룹 출신들이야. 바로 기초를 튼튼하게 음악수업을 한 사람들이라 지금의 영광도 있는 거란다. 네가 나중 째즈를 하던 라틴음악을 하던 상관은 없지만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갈수록 클래식 피아노를 제대로 배워왔다는 것을 아마 감사할거야. 작은 아빠는 레슨이라는 것도 못 받아 보고 기초가 부족하다 보니 악보 보는 능력이 젬병이잖니. 다만 너도 초견(악보를 처음 보면서도 바로 정확한 연주를 하는 것)능력을 키워야 하니 그런 면에서 연습 많이 하고.”

“예,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


내가 페루를 떠나오기 전 조카는 한국에 데리고 갈 음악인들을 예서 발굴한다고 알헨티나에서 음악대학을 다니던 한참 윗 연배의 사람이나 몇몇 사람들과 접촉을 하면서 부지런히 연습을 해나가고 같이 음악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었다.


이제 둘이 잠시 헤어질 연습을 해가면서.....

출처 : 박우물의 7080 이야기
글쓴이 : Rail Art박우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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