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뼈를 깎는 고통

이웃들의 이야기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1. 8. 8. 18:55

본문




* 뼈를 깎는 고통 *

- 양 지 건 -


영동 세브란스 병원. 7월 31일 오후 3시경. 어머님이 이 병원에서 수술을 하셨다.
나와 동생은 초조한 마음으로 수술대기실에서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는 한 부부가 우리 못지않은 불안함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나는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그들의 딸이며,
수술실에 들어 간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아서 걱정이 많다는 것,
그리고 턱을 수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을 다시 본 것은 다음 날이었다.
수술을 받은 딸은 여고생으로 보이는 아이였고, 턱 주위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나는 동생을 통해 이 여고생이 한 수술이 성형 수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자주 문병을 왔는데, 모두들 부러운 눈초리로 이것저것 물어보다 돌아갔다.
난 수술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라,
고통을 겪고 있을 그 아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자꾸 웃음이 나왔다.

수요일 오후 어머니는 6인실로 병실을 옮기셨는데, 바로 옆자리에 상태가 정말 심각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온 얼굴에 검은 피멍이 들어 있었고, 얼굴은 온통 부어 있었다.
나는 교통 사고를 당한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그 다음 날, 한 무리의 젊은 아가씨들이 이 여자에게 문병을 왔고,
난 그들의 대화를 통해 이 아가씨 역시 턱 수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성형 수술이라는 것이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간단한 수술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상당수의 여자들이 실제로 성형 수술을 한다는 것
(문병 온 아가씨들이 전부 쌍꺼풀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동생이 판정해 주었으며,
그 뒤로도 유사한 이유로 입원한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다),
아름다움을 향한 열정과 노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이들은 그야말로 턱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내는 중인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아름다움이 무수한 허물을 덮고 있는 중이다.
하리수의 본을 받아, 동성애자들도 한국 사회의 용인을 받고 싶다면 아름다운 동성애자를 내세울 일이다.
전도서의 기자는 인생의 모든 것이 헛되다고 반복해서 말하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들의 귀에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인생의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육체만큼 허무한 것이 또 있을까?
미이라를 만든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육체의 결국이다.
남는 것은 정신이요 말이다.
일제 시대와 군사 독재 시대에 정신을 지켜내기 위해 몸에 가해지는 폭력과 고통을 참던 사람들은
이제 전혀 다른 가치를 위해 고통을 감수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엄청난 고통을 참으면서 얻고자 하는 것이 결국에는 허상이라는 것이다.

우선, '미'라는 개념 자체가 허상이다.
이 세상에 아름다움이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하리수는 아름답고 이영자는 못난 것인가?
미 역시 권력 다툼의 부산물이다. 매스 미디어라는 거대한 힘에 의해 수행되는 파워 게임이다.
우리가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것의 대부분은 아름답다 라고 판정된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한 없이 무딘 우리의 미감각은 인공의 것에만 감동하도록 길들여지고 있다.
또한 수술을 통해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리라는 것 역시 허상이다.
쌍꺼풀 한 사람은 기회가 된다면 턱을 깎고 싶을 것이고, 코도 높이고 가슴도 키우고 싶을 것이다.



이제 성형 수술을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연예인들은 당당하게 수술을 했다고 밝힌다.
그들도 자신감을 얻은 것이 이제는 성형 수술이 어떤 특수한 사람들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형 수술의 장점을 말하는 사람들은,
성형 수술을 통해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았다면 의미가 있지 않냐 라는 질문도 하고,
성형 수술도 결국은 화장같이 자신을 꾸미고자하는 욕구의 표현이라는 주장도 한다.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신체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성형 수술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신체적 결함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꾸 늘어난다는 데에 있다.
충분히 날씬한 사람이 요즘 살이 쪄서 고민이라는 말을 정말 걱정 어린 눈초리로 하거나,
자신의 모습 어디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낙망하며 하는 모습을 보면 측은하다 못해 화가 난다.
그 사람에게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심어 준 어둠의 영
(난 이런 것이야말로 어둠의 영, 사탄이라고 생각한다)에게 화가 난다는 것이다.
성형 수술은 화장과 다르다. 드는 비용이 다르고 치뤄야 하는 대가가 다르다.
인간이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이 육체적 고통인데 이러한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 중심에 미, 더 정확히 말하면 예쁘다는 타인의 평가가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다른 가치를 위해서도 그런 희생을 할 수 있냐고 묻고 싶다.


우리는 부패한 아름다움으로 뒤덮인, 회칠한 무덤 같은 사회를 바꾸기 위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 성형 수술을 하지 않는다.
2. 성형 외과의 의사가 되지 않는다.
최소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라는 이유로 성형 외과를 선택하지 않는다.
3. 성형 수술을 한 사람에게 예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4. 외모를 가지고 놀림감을 삼지 않는다.
5. 많은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는 사람에겐 상대적인 무관심을, 반대의 사람에겐 관심을 쏟는다.
6. 나는 아름답다라고 자신을 세뇌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7. 외모에 대한 인사를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너 요즘 살 빠졌다." 등.
8.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을 보는 눈을 주시기를 기도한다.

***


반응형

'이웃들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01.09.12
생각  (0) 2001.08.21
  (0) 2001.08.04
쎈다이를 돌리며 2  (0) 2001.07.31
쎈다이를 돌리며  (0) 2001.07.24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