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여름인가요.
가뭄 때문에 걱정입니다.
이럴 때 좀 더 갈증을 제해줄 박우물이 못됨을 안타까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웃음을 퍼 올리는 글이었으면 합니다.
동생인 종이인형은 열심히 학업중입니다.
형인 박우물은 세상을 헤집고 다니면서 부지런히 이야깃거리를 퍼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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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졸업 후 이일저일 등을 전전하다가 노량진학원가에서 관리교사로 근 1년을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종합학원에 다니는 이들은 꼭 재수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군 전역이나 사회생활 후 늦깎이로 문을 두드린 사람, 학과가 맘에 안 들어 다시 시작하는 사람,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학원을 찾는 사람등 다양한 이력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학원가입니다.
훈이는 그중 지방전문대학에 재학하다 해병대를 마치고 학원에 들어온 녀석입니다.
여드름투성이에 투박한 인상이지만 붙임성 있게 첫날부터 안면을 익혀서 인사를 교환하는 사이였지요.
조금 가까워지며 관찰을 해보니 한 이삼일은 엉덩이를 책상에 붙이고 근성 있는 공부를 하지만 하루는 어김없이 술에 만취되어 있는 괴짜였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본인의 말처럼 술만 안 마시고 책만 붙잡았더라면 전투를 하듯 학업에 임했던 녀석은 어느 학교학과든 입성할 수 있었다는 게 농처럼 들리진 않았습니다.
그때 롤랜드 에머리히감독의 <인디펜던스 데이>가 특수효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였습니다.
재수생들이 모인 곳이라 바깥의 화제에 대해서 덜 민감했을 지 모르지만 그 영화에 대한 소문은 대단해서 녀석이 속한 학급에서도 당연히 이야기가 안나올 리 없겠지요.
녀석이 속한 반은 어떤 등급 기준으로 나누었는지 모르지만 조금 학업분위기가 어수선한 곳이었습니다.
더구나 훈이 주변에 있던 동아리들은 특히 산만한 애들이라 영어에는 별반 자신이 없었나 봅니다.
"형, 근데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ance Day)가 무슨 뜻이어요?"
불쑥 훈이에게 그중 한 애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자기들끼리 딱히 답이 안나오자 쉬는 시간에도 책을 붙잡고 있는 훈이에게 질문을 한 것이죠.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은 훈이는 해병대출신답게 뒤로 물러서지 않고 단어분석까지 하며 설명을 하였습니다.
"글세, 잘 모르겠지만 니들 스포츠에서 디펜스(defense)가 뭔지는 알지? 그게 수비나 방어라는 뜻이야. 그래서 앞에 부정을 뜻하는 In이 접두어로 붙으면 방어를 못한다---그렇지! 아마 <무방비의 날>이란 뜻일 거야. TV에서도 선전할 때 보니까 외계인들 공격에 백악관도 속수무책으로 당한 걸 보면 -- 그러니까 전혀 무방비의 날이란 해석이 맞을 거야. 무방비의 날. 그래, 그거야."
"역시 형은 책만 파더니 뭔가 다르네요."
그러고 나서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 까요?
발음만으로 추론한 훈이의 해석은 그날 점심때까지 교실에서 유효하였습니다.
"야. 너 그 무방비의 날 봤어? 특수효과랑 재미가 끝내주더라. 지루한 지 모르고 보았다니까. 그런 것은 진짜 영화관에서 봐야 실감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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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물이 퍼 올린 스물여섯번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