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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사랑을 두려워 하는가?

이웃들의 이야기

by 종이인형 꿈틀이 2000. 2. 2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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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시죠?
목도리를 둘렀건만 춥다는 느낌은 여전히 가시질 않네요. 달포 후면 매화가 꽃을 피리라는 기대를 합니다.

이번 글은 제가 아는 선배의 글인데, 제 칼럼에 올리고 싶어 그분의 허락을 받아 올립니다.
글쓴이는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여교사입니다.
-종이인형-



* 나는 왜 사랑을 두려워하는가 *

-이 정 옥-

*** 1.
바둑이가 죽었다. 나흘째 아무 것도 안 먹고 애쓰다가 가냘픈 숨을 거뒀다. 힘들게 견디다 결국은 이기지 못하고 갔다. 동물의 생명력을 믿고 싶었는데…. 미안하다, 바둑아.

어버이날, 재롱 보며 지내시라고 시골 사는 오빠가 바둑이를 가져왔다. 사람도 제대로 사랑 못하는 판에 동물을 기르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던 나였지만, 내 집에 온 짐승이기 때문인지 바둑이가 좋았다.

착해 보이는 눈과 예쁜 쌍꺼풀, 뭉퉁한 코, 조그마한 몸에 짤록한 다리, 하얀 바탕에 갈색 점박이. 이름은 뭐로 할까 머리를 짜냈지만 결국 바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먼 길 상자에 갇혀 와서인지 처음엔 기운 없이 지내더니 한 이틀 마루로 기어오르기도 하고 아직 여물지 않은 목소리로 캉캉 짖기도 했다. 맑은 소리였는데, 또 기운이 없어지며 밥을 입에 대지 않았다.

배고프면 먹으려니 하는 주인의 무지 속에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갔다. 큰일이다 싶어 병원엘 가고 약도 지었다.

그러나 또 오해를 했다. 약을 먹고 난 뒤 제법 국 한그릇을 바 비우는 모습에 이젠 됐다 라고 여겼다. 밤에 앓는 소리를 하다 짖어대다 하는 소리를 들으며 기운을 차리는 거라 생각했다.

내일 아침이면 또 재롱을 부리려니 기대하던 나의 무지, 아침에 내 인기척을 듣고 나오는 놈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내 발 밑에서 연신 고꾸라지는 바둑이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너무 놀랬다. 공포가 엄습했다. 아 죽겠구나! 내가 보는 데서 죽을까봐 두려웠다. 그 아침에 난 바둑이를 포기했다.

그러나 그러고도 바둑이는 사흘을 더 견뎠다. 무엇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본능적인 힘으로 버티는 바둑이가 안쓰러워 마음이 아팠다. 너무 빨리 판단하고 체념했던 것을 후회했다.

죽어있는 바둑이를 보게 될까봐 두려웠는데, 오히려 죽어가는 모습을 하나하나 지켜봐야만 했다. 죽어가는 녀석을 쓰다듬고 물을 먹여주며 그제야 그 녀석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었다.

너무 늦은 깨달음, 때늦은 안타까움이 날 힘들게 했다. 얼굴을 파묻고 따뜻한 모습으로 잠자던 바둑이가 네 다리를 포개고 늘어졋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눈을 조용히 감고 있다. 미안해하는 내 마음을 배려해 준 것일까? 죽은 뒤의 모습은 생각처럼 무섭지 않았다. 여전히 착한 얼굴로 깰 수 없는 잠을 잤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인연만큼만 바둑이는 나와 함께 있었다. 사랑이 어떤 것인 줄 알게 했다.

사랑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잃어버릴 것에 대해 미리 두려워하지 않는 것. 앞으로는 후회 없는 사랑을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 2.
바둑이를 산에 묻은 지 하루가 지났다. 교회 가려고 차를 기다리다가 수애의 소식을 듣게 됐다. 자살을 했다고. 잠시 휴학을 했다고 편지가 왔었는데, 다시 복학하면 잘 해보겠다고 전화도 왔었는데….

믿어지지가 않았다. 난 그 애의 분명한 의견과 명랑한 말투에 오히려 안심했는데, 이젠 다 컸구나 싶었는데, 걱정 놔도 된다고 여겼는데, 또 똑같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 애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린 게 얼마나 암담했기에 그런 끔찍한 결론을 내야했던 걸까?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같다.

사랑이 필요했던 애인데 난 또 지나쳤구나! 돌이킬 수 없게 되고야 그걸 아는 게 괴롭다. 난 그냥 서서 기다리기만 했다. 무언가를 요구하기를, 그 애가 다가올 때 그때서야 반응하고 또 기다리고만 섰었다.

그 애에겐 적극적인 사랑이 필요했는데 난 그걸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때늦은 후회이지, 너무 늦은 깨달음.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네가 친밀하게 다가오면서도 먼저 널 사랑해준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에 늘 불안해했는데, 이제야 그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끝까지 널 지켜줄 사람이, 그런 약속이 네겐 필요한 거였나 보다. 네가 날 찾을 때 넌 먼저 내가 널 찾아주길 바란 거였나 봐. 이제야 그런 생각을 하는 난 참 어리석다. 멍청이다. 너 혼자 얼마나 힘들었니? 깜깜한 곳에서 얼마나 외로웠니. 연락이 안 오기에 이젠 잘 살고있다고 여겼는데.....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괜찮다는 네 말을 바보같이 믿었........구나..........'


아이들(학생)을 데리고 연극을 보러 갔다. 반짝이는 별을 이리저리 나는 어린왕자를 본다. 배우의 낭랑한 음성이 들린다.

"나는 그때 아무 것도 몰랐어. 그 꽃이 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말고, 그 꽃이 하는 일로 그를 평가했어야 했는데.....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꽃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았어야 했어. 그 조그만 불평들은 그 꽃이 정말로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는 걸 눈치 챘어야 했지. 꽃들은 자기 마음을 정직하게 말하지 않거든. 하지만 난 너무 어려서 그 꽃을 사랑할 줄 몰랐던 거야."

어린왕자의 쓸쓸한 말이 가슴을 친다.

'난 너무 어려서 사랑할 줄 몰랐던 거야.'

나도 어렸던 걸까?
이젠 하나님 앞에서 어른이 되고 싶다. 두려움 없는 사랑으로,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원하는 대로 필요를 채우는 사랑으로 자라고 싶다.

또다시 사랑할 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반복치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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