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사의 행복 이야기>
길 너머 서해 바닷물을 손에 담을 수 있는 곳에 11년째 아담한 농어촌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사님이 계신다. 그분은 현실과 환경을 뛰어넘는 그만의 행복을 누릴 줄 아는 분이다. 오십대 초반인 그 목사님은 사십대인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좀 더 젊을 때 부부가 같이 여행도 하고 등산도 하며 건강할 때 부부의 정을 누리시오. 오십 고개 넘어가면 맘이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오."
그분의 사모님은 우울증에다 류머티스 관절염, 그 외 세 가지의 병을 더 가지고 산다.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써보고, 여러 번에 걸친 진단도 해 보았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고 한다. 병은 부모님으로부터 내려온 선천성인데 오십대가 되니까 점점 악화되는 희귀병이라고 한다.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는데, 큰아이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비위가 약해 아들의 대소변을 못 치우는 아내를 대신하여 목사님이 치우며 지금껏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그 아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기에 나름대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이제는 식사까지도 자신이 손수 차려야 하는 현실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불만스런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내가 발작하듯 고통스러워하면 옆에서 같이 있어주는 것을 당연히 하면서, 때로는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당장이라도 죽고 싶다는 말까지도 할 때, 마음이라도 그 고통을 같이 나누며 위로한다고 한다.
목사님은 교인들로 인해 감격하고 있었다. 목회자와 더불어 사모가 사역할 부분이 많이 있지만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두 식구가 병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해하며 섬기는 성도들이 고맙기만 하다. 목사님이 은퇴하면 마을에서 같이 살자고 조르는 교인들의 정과 배려에 감격하며 나 같은 행복한 목회자가 어디 있는가 하며 즐거워한다. 부임한 목사로사 교인들에게 이와 같은 격려의 말을 듣기까지는 남 모르는 희생과 섬김의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하게 한다.
지난 가을에는 목사님이 삼 주간 통혼 치료하는 일이 있었다. 이유인즉, 면소재지에서 승합차를 운전하다가 갑자기 개가 길로 달려들어 차에 치여 죽는 사고가 있었다. 개주인은 같은 동네 사람이며 술취한 상태였다. 목사님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으나 개주인은 목사님의 옆구리를 발로 차서 고꾸라뜨렸다. 그바람에 목사님은 옆구리를 다치게 되었다. 목사님은 위험한 급소는 피하여 그나마 다행으로 알고 일반보험으로 치료를 했다고 한다. 얼마든지 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권리와 손해를 찾을 수 있었으나 더 큰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조용히 처리하는 목사님에 대해 그 동네에서는 이러한 소문이 나돌았다.
"ㅇㅇ교회 목사는 억울하게 맞고도 고소도 안하고 치료도 자기 돈으로 했다네!"
목사님은 꼭 하고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행복론'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을 근거로 하여 자신의 삶 속에서 체험한 행복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이 목사님이 왜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갖는가? 주어진 암담한 현실을 신앙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본다. 그도 육신을 입고있는 사람으로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지만, 자칫 자기까지도 우울할까봐 의도적으로 행복을 찾으며 교인들에게 강조하는 것이라고 한다.
감사와 행복은 그것을 찾을 때 더 가까이서 발견되는 원리를 그분은 체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와 교제를 나눈 후 가까운 정읍에 나가는 일도 사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휴대폰을 걸지만 계속 통화중이다. 누워서 거동도 못하는 사모님이지만 아내의 위치를 세워주며 인정하는 목사님의 세심한 배려에 고개가 숙어진다.
사랑하는 목사님!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듯이 사모님의 병도 언젠가는 치료약이 있으리라 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지금껏 해왔듯이 그 자리를 지켜 주세요. 기도와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활뫼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