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규소(Si)
(2020. 3. 8. / 자유 주제)
삶은 다툼이다. 때론 싸우고 때론 피하며 살아남는다. 나름의 창이 있고 방패가 있다.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잡아먹는다.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을 피한다.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을 피하는 방법은 더 빨리 달리거나 찾지 못할 곳으로 숨거나 아니면 맛이 없다. 초식동물은 식물을 뜯어먹는다. 식물은 초식동물에게 뜯기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은 풀을 내거나 맛이 없거나 때론 초식동물을 죽이는 방법을 통해 살아남는다. 독풀을 먹은 동물은 죽기도 한다.
식물이 동물을 피하는 방패는 다양하다. 그 방패는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공격도 하는 창이기도 하다. 가시가 그렇다. 선인장은 가시를 내어 자신을 공격하는 동물을 찌른다. 상대를 죽이기 위함보다는 자기가 죽지 않기 위함이다.
벼과 식물은 규소를 이용했다. 유리 원료인 규소를 몸에 발랐다. 거칠고 단단한 규소를 입은 벼는 거칠고 뻣뻣하다. 맛도 별로 없다. 여느 벌레와 초식동물로부터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한 방패는 아니다. 이 벼를 아랑곳없이 즐겨먹는 줄점팔랑나비와 황소가 있으니. 그래도 효과적인 방패임은 틀림없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를 찾듯 초식동물은 거친 풀보다는 부드러운 풀에 끌리게 마련이다.
벼과 식물이 규산을 끌어들인 것은 참 현명한 전략이다. 흙의 원료가 되는 지각 암석의 대부분은 규산염이다. 물론 여기의 규산을 식물이 직접 먹지는 못한다. 바닷물을 사람이 직접 먹을 수 없듯이. 하지만 이 규산은 지하수 같은 저장된 양분이다. 아주 풍부하다. 더구나 이 양분을 두고 식물끼리 경쟁하는 일도 없다. 벼과 식물은 규산을 아주 좋아하지만 다른 과 식물들은 소 닭 보듯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5가지 영양소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이다. 마찬가지로 식물이 자라는데 꼭 필요한 16가지 영양소가 있다. 질소, 인, 칼륨, 칼슘, 마그네슘, 황, 붕소, 철, 망간, 아연, 구리, 몰리브덴. 이 필수 영양소에 규산은 없다. 규산은 필수영양소는 아니기에 다른 식물들은 없어도 자라는 데 별 지장이 없다. 그러므로 굳이 규산을 먹으려고 다투지 않는다. 그러니 벼과 식물이 경쟁 없이 얻을 수 있는 양분이다. 다른 양분들은 식물들 간에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다.
벼는 규산을 아주 좋아한다. 일반적인 식물을 질소를 가장 많이 찾는다. 작물을 재배할 때 다량으로 줘야하는 영양소는 질소, 인, 칼륨인데, 이 중에서 질소가 가장 많이 필요하다. 질소는 몸집을 키우는 영양소이므로 질소가 부족하면 키가 크지 못한다.
벼도 물론 질소가 필요하다. 벼 100kg를 생산하는데 흡수한 질소의 양은 1.8kg다. 그런데 규산은 14.8kg이 필요하다. 질소보다 무려 8.2배나 많은 양을 흡수한다. 필수영양소도 아닌 규산을, 벼는 그 어는 양분보다 더 많이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족하지 않도록 공급해줘야 한다. 야생의 벼과 식물인 강아지풀, 뚝새풀, 조릿대 등은 저수지의 물고기와 같아서 별도로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농작물인 벼는 어항의 물고기와 같아서 주기적으로 산소를 공급하고 먹이를 줘야 한다. 그래서 다른 농작물에는 몰라도 벼에는 규산질비료를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산이 부족한 논에서 자라는 벼는 매가리가 없는 약한 벼가 자랄 것이다. 작물의 영양관리란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다. 리비히의 최소율의 법칙에 따라 식물은 부족한 성분에 의해 생육이 지배된다. 알을 낳는 암탉에게 칼슘이 부족하면 껍데기 없이 얇은 막만 있는 알을 낳듯, 규산이 부족한 벼는 보호막이 없이 보들보들 약하게 자란다.
가죽점퍼를 입은 오토바이 라이더는 근사해 보인다. 한마디로 폼 난다. 그런데 폼만 나는 것이 아니라 기능도 있다. 가죽점퍼는 바람을 막아주고 혹시라도 넘어졌을 때 몸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하는 보호막이다.
벼에 있어서 규산은 가죽점퍼다. 규산은 벼의 잎을 꼿꼿하게 하여 햇빛 받는 자세를 좋게 하니 광합성이 잘 되어 생육이 왕성해지고 벼알 여뭄도 좋게 한다. 또한 잎과 줄기를 단단하게 하여 병해충의 발생도 줄고 비바람이 불어도 덜 쓰러지게 한다. 또한 벼는 규산이라는 훌륭한 방패를 갖춘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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