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 5일 / 13세 이전의 행복했던 기억
먹는 게 가장 행복했다. 그땐 그랬다. 먹거리는 개학 후 만나는 친구처럼 마냥 반가웠다. 친구 얼굴이 까매졌든 하얘졌든, 머리카락이 자랐든 잘렸든, 옷이 꼬까옷이든 누더기든 달포 만의 만남은 호들갑스러웠다.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듯 고픈 배만 달랜다면 맛은 상관없었다. 밥 때가 되어 뭐라도 끼니를 때우면 그지없이 행복했다. 거지의 행복이다. 행복은 더듬으면 닿는, 그렇게 가까웠다. 손 안의 구슬처럼 딱지처럼, 가진 것만으로도 남부럽지 않은 부자였다.
참살이 식사로 보리밥이 인기다. 촉촉이 비 오는 날엔 칼국수가 인기다. 어르신들 중에는 보리밥과 칼국수를 싫어하는 분들이 있다. 배고픈 시절 질리도록 먹어서 지긋지긋하여 거들떠보기도 싫다는 거다. 그러실 수 있다. 나도 그렇다. 근데 그렇지 않다.
나도 질리도록 먹었지만 지긋하지는 않다. 어르신이나 나나 같이 배곯았고 칼국수를 먹었지만 내 기억은 행복이다. 이 기억의 차이는 처지의 차이일 것이다. 그때 나는 어렸고 어르신들은 어른이었다. 아이는 밥이든 죽이든 눈앞에 차려주기만 하면 좋았다. 어른들은 그것이라도 구하려고 애쓰고 맘 졸이며 갖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아마 그 차이가 아닌가 싶다. 나는 어르신들과 다른 기억으로 그 음식을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따금 칼국수를 먹으러 간다. 어릴 적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함도 있다. 지금의 칼국수는 그때보다 훌륭하다. 국물 맛 내는 다시가 그렇고 면에 올리는 고명이 그렇다. 그땐 특별한 다시와 고명이 없었다. 그저 팥, 콩, 들깨 국물이었다. 별다른 고명은 없었다. 지금의 칼국수는 사골, 바지락으로 국물을 낸다. 그땐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얘기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만큼 맛있게 먹지는 못한다. 맛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맛을 못 느낀다.
그때가 더 맛있었다고 기억하는 나의 기억은 진실이 아닐 것이다. 진실이 아님을 알지만 굳이 들춰낼 생각도 없다. 사람의 감각은 생각보다 잘 속는다. 정확치도 않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처럼,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미 새겨진 기억에 감각이 따라간다. 난 일부러 내게 속는 지도 모른다. 지난날의 내 감각이 지금의 내 감각을 속이는데, 부러 속아주는 것이다. 손주의 거짓말에 속아주는 할아버지처럼 허허 하며 눈감아주는 것이다. 그렇게 속으면서 난 어릴 적의 행복을 유지하고 있다. 속은 대가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면, 난 계속 속으련다.
행복은 꿀단지에 꿀을 꾸역꾸역 채우는 맛이다. 가득 찬 것의 흐뭇함도 있지만 채워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 재미는 빈 단지일수록 클 것이다. 많이 먹어 배부른 것도 기쁨이고, 적게 먹어 맛있게 먹는 것도 기쁨이다. 배고픔이 행복은 아니지만 배고파도 행복했다. 배고파서 음식이 맛있었던 추억은 별미 상차림이다.
지금은 그 맛을 찾을 수가 없다. 그 맛은 머릿속 기억에 오롯이 자리한 추억이다. 맛을 느끼는 것은 입속 혀의 미뢰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고, 머릿속 뇌의 해마 기억으로도 느낀다. 배고픈 추억도 행복한 추억이다. 내 어릴 적 추억은 먹는 것이 마냥 행복한 해맑은 소년이다. 배고프니 행복하다는 말은 배부른 소리일지 몰라도 그때 나는 그랬다. 어릴 적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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