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닭의 금식 ***
교회 앞 텃밭의 반절을 철망으로 막고서 거기에다 가축을 키운지 벌써 두 해가 된다.
그들로서는 넓은 운동장이 갖추어졌고, 여러 나무들이 있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지고,
가을에는 먹음직한 감을 서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높이 뛰는 수고가 필요하다.
무슨 얘기가 하면, 닭들이 노랗게 익은 감을 보고 푸덕거리며 날아올라 나무에 달린 감을 쪼아먹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갈대로 엮은 한간의 집에서 산다.
이 우리 안에는 성질과 생김새가 다른 동물들이 그럭저럭 잘 어울리며 살고 있다.
먹이를 가지고 오면 헐레벌떡 모여드는 토종닭, 이와는 달리 달아나기에 바쁜 오리,
무척 못생겼지만 점잖은 기러기 부부(암컷은 눈이 예쁨), 그리고 소리를 빽빽 지르는 덩치 큰 거위.
이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재밌는 볼거리이자 동네의 음식물쓰레기을 해치우는 청소부이다.
생김새는 달라도 먹는 것은 같으며, 그 안에서도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다.
크기에 따라서 또는 먼저 온 서열에 따라서 먹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사람이 먹고 남긴 모든 부스러기는 다 먹는다. 밥, 면, 고기, 과자, 과일, 채소 등등.
사료 외에도 온갖 풀이나 곤충들 그야말로 잡식성 가축이다.
매일 이들을 보며 느끼는 것이 있다.
그들은 먹는 일에 거의 시간을 보낸다.
물론 사료는 아침에 한번만 주는 탓도 있겠지만 오직 먹을 것만 찾아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침에 사료를 주려고 밖에 나가면 내 모습이 안보여도 벌써 나를 기다린다는 소리를 내고 있다.
"꼭..꼭..꼭...꿱..꿱.. 쿡..쿡.. 쇅..쇅....?"
하여튼 열심히 먹고 자라는 것이 그들의 삶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라서 잡아먹힌다.
주인은 그들을 잡아먹기 위해 키우는 수고를 하며, 그들은 잘 자라서 먹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먹다 버린 찌꺼기도 그들은 좋아라 하면서 몰려든다.
그에 반하여 사람들은 가장 좋은 음식과 가장 좋은 주택에서 온갖 편리함을 누리고 산다.
과연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먹기 위해서 사는가, 아니면 살기 위해서 먹는가?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이 있는가!
우리 모두 스스로 대답해야 할 것이다.
자연은 철저히 먹고 먹히는 세계임을 자그마한 가축들을 키우면서 자주 느낀다.
사람들이 남긴 찌꺼기를 가축들이 먹고, 그래도 남는 부스러기와 그 가축들의 배설물은 흙속의 여러 생물들이 먹는다.
두더지, 땅강아지, 지렁이, 송장벌레, 개미, 지네, 노래기, 달팽이, 사마귀, 무당벌레 등등의
여러 유충들과 미생물들이 먹고 먹히며 서로 공존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어울러져 살아가는 기름진 밭은 또 다른 생명들이 자라는데 필요한 양분을 제공한다.
감나무, 살구나무, 매실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들이 자라서 가을에 열매를 맺으면 사람이 먹고,
그 부스러기는 가축들이 먹고, 나뭇잎은 흙속의 생물들이 먹고...
자연의 법칙은 먹이사슬로 이어져 어김없이 순환하고 있다.
하나의 죽음은 다른 하나의 생존의 필요한 양식이 되므로 헛되이 버려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설계이다.
예배당에는 태엽을 감아야 작동하는 오래 된 벽시계가 있다.
가끔 태엽을 감아 놓으면 시침은 시침대로 분침은 분침대로 초침은 초침대로 돌아간다.
이중에 하나만 고장나도 전체가 고장나게 된다.
서로 이어져있는 먹이사슬의 전체를 무시한 채 부분을 끊어버리면 생명시계의 전체가 멈춰버리는 사태가 올 것이다.
자연의 모든 피조물들은 정해준 법칙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법칙에 따라 사람들은 동식물을 가꾸며 다양한 유익을 얻는다.
자연은 그 법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만이 자연법의 그 이상(以上)이 될 수도 있고, 또한 그 이하(以下)가 되기도 한다.
어제부터 암탉들을 우리 안에 가두고 물만 주었다.
그동안 아이들이 좋아하는 계란을 잘 낳아 주었는데 요즘은 점점 그 횟수가 줄어갔다.
그 이유는 닭이 일년동안 잘 먹고 자라면서 비만해진 것이다.
엉덩이에 살이 많이 쪄서 오리처럼 뒤뚱뒤뚱 걸어간다.
이웃 교회에 다니는 양계 전문가인 이 집사님에게 물어보니 닭들이 일년쯤 되면 그런다고 한다.
비만이 되면 계란도 낳지 안는다고 한다.
그 해결 방법은 금식을 시켜서 쌓인 지방을 빼면 다시 새 닭처럼 알을 잘 낳을 거라고 말해주었기에 어제부터 십일 내지 보름간 금식시키기로 했다.
수탉은 밖으로 내 놓았는데, 영문을 모르는 그는 갑자기 홀아비신세가 되어 어떻게 하면 암탉이 있는 우리 안으로 들어갈까 궁리하고 있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지나치게 자라면 열매가 없다는 것을 배운다.
적당한 고난과 궁핍은 오히려 생명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풍요한 시대에 절제의 능력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 활뫼지기 -